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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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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기도와 응답 연중 제1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말’(Word)에 대한 깊은 대조를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는 소리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울부짖는 한 여인의 ‘침묵의 말’이 있고, 복음에는 마귀조차 굴복시키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한나는 실로라는 성소에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녀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수치심, 프닌나의 멸시, 남편의 위로조차 닿지 않는 깊은 고독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통곡뿐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녀의 기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사무 1,13). 사제 엘리는 한나의 겉모습만 보고 그녀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여 꾸짖습니다. 세상의 눈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깊은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오해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진심을 토로합니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사무 1,15).  ‘주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기도’,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남들이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가슴을 치며 속으로 삼키는 그 눈물을 하느님께서는 모두 보고 계십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고 , 그녀는 사무엘을 잉태하게 됩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은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따분하게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영혼을 꿰뚫고, 삶을 변화시키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권위는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마르 1,24) 하...

[묵상] 2026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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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을 수 없는 곳에 닿는 손길 성탄 시기의 끝자락인 주님 세례 축일을 앞둔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를 고쳐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당시 나병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천형’(하늘이 내린 벌)이라 불렸고, 사회적으로는 ‘살아있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가족과 마을에서 격리되어야 했고, 혹시라도 일반 사람들과 마주치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서 사람들이 피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는 금기를 깨고 예수님께 다가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루카 5,12). 이 기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는 “나를 고쳐주시오”라고 떼를 쓰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100% 믿었지만, 그 결과는 전적으로 그분의 뜻에 맡겼습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이라는 단서, 이것이 바로 참된 겸손이자 믿음입니다. 이 절박하고 겸손한 믿음 앞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동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그를 고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루카 5,13). 유다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사람에게 손을 대면, 손을 댄 사람도 부정해집니다. 사람들은 더러움이 옮을까 봐 그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금기를 깨고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병이 나아서 깨끗해진 다음에 만져주신 것이 아니라, 고름이 흐르고 상처투성이인 상태일 때 그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나병 환자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육신의 병이 낫기 전에, 이미 그의 얼어붙은 마음,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깊은 상처가 먼저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부정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을 삼켜버리고 정화하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