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17일 연중 제1주간 토요일
자비의 눈길
한 주간의 일상을 마무리하는 연중 제1주간 토요일입니다. 오늘은 ‘수도 생활의 아버지’라 불리는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당시 세리는 동족의 돈을 걷어 로마에 바치고, 그 과정에서 착복을 일삼았기에 ‘매국노’이자 ‘공인된 죄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정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세관 앞을 지나가시다가 레위를 눈여겨보셨습니다. 경멸의 눈초리가 아니라, 자비의 눈길이었습니다. 그리고 짧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라라”(마르 2,14). 이 한마디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고 합니다.
이 장면은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성 안토니오 성인과도 겹칩니다. 성인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라는 복음 말씀을 듣고, 즉시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레위 역시 돈이 쌓여 있는 세관 의 테이블, 자신의 밥줄이자 인생의 전부였던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레위의 집에서 많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이것을 보고 기겁하며 비난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르 2,16). 그때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핵심을 꿰뚫는 말씀을 남기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르 2,17). 이 말씀은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나는 내가 병들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가?
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나려면 먼저 내가 아프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건강해, 나는 문제없어”라고 고집 피우는 사람은 아무리 유명한 의사가 와도 고칠 수가 없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스스로를 ‘의인’이라 믿었기에 예수님이라는 의사가 필요 없었습니다. 반면 레위와 죄인들은 자신들의 영혼이 병들었음을 알았기에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구원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순간 시작됩니다.
둘째, 나는 다른 사람을 어떤 사람으로 바라보나요?
바리사이들에게 죄인은 피해야 할 ‘전염병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죄인은 고쳐주어야 할 ‘환자’였습니다. 우리는 때로 성당 안에서조차 누군가를 판단하며 선을 긋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래?”라고 비난하기보다, “저 사람도 영적으로 아픈 곳이 있구나. 의사이신 예수님이 필요하겠구나”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완벽한 이력서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레위처럼 과거가 부끄러워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 영혼의 의사이신 예수님 앞에 나의 아픈 곳을 솔직하게 드러냅시다. “주님, 저는 영적으로 많이 아픕니다. 욕심의 병, 미움의 병이 깊습니다. 의사이신 당신께서 저를 고쳐주십시오.”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며 일어설 때, 주님께서는 기꺼이 우리 인생의 식탁에 마주 앉아 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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