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8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당신은 누구의 종입니까?
어제 우리는 ‘불의한 집사’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자신의 미래를 위해 주인의 빚 문서를 위조했던, 세상적으로는 참 ‘약삭빠른’ 집사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부정직함이 아니라, 닥쳐올 위기를 대비하는 그의 ‘치열함’과 ‘슬기로움’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핵심을 꿰뚫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그 질문은 바로 “당신은 무엇에 충실한 사람입니까?”, “당신은 누구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루카 16,10). 예수님의 논리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잠깐 있다 사라질 이 세상 재물을 다루는 데에도 충실하지 못하고 탐욕을 부린다면,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에게 영원하고 참된 생명의 부요함을 맡기실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이 말씀을 듣고 있던 바리사이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었기에,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루카 16,14 참조). 그들은 겉으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하느님을 섬기는 척했지만, 그들의 마음, 그들의 진짜 주인은 ‘재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십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루카 16,15).
우리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 역시 하느님과 재물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는 않나요? 주일에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 같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돈을 버는 것이 삶의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재물’에 충실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충실하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을 의미할까요? 오늘 제1독서 로마서의 마지막 부분은, 그저 지루한 이름의 나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긴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증거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동역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는 “나의 협력자들인 프리스카와 아퀼라”를 언급하며, 그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내 목숨을 구하여 주었습니다”(로마 16,3-4)라고 말합니다. 또한 자기 집을 교회에 내어주어 모든 신자의 후원자가 된 "가이오"(로마 16,23)에게도 감사하고, 심지어 도시의 “재정관 에라스토스”(로마 16,23)도 신앙의 형제로 소개합니다. 바오로가 소개한 이 사람들이야말로 오늘 복음 말씀에 대한 살아있는 응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리스카와 아퀼라는 ‘재물’보다, ‘자기 목숨’보다 더 큰 가치인 복음과 형제의 생명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작은 일’을 넘어 ‘큰일’에 충실했습니다. 가이오는 자신의 ‘불의한 재물’(집)을 움켜쥐지 않고, 그것을 ‘참된 부요함’(교회 공동체)을 위해 기꺼이 내어놓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루카 16,9)는 말씀을 실천했습니다. 에라스토스는 도시의 ‘재정관’으로, 매일 ‘돈’을 만지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진정한 주인은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이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주 작은 일’, 곧 자신에게 맡겨진 재물과 생명과 지위에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섬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큰일’, 곧 복음을 전하는 사도의 협력자라는 영원한 영광을 맡기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당신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재산을 맡은 ‘집사’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돈, 시간, 건강, 재능은 모두 ‘아주 작은 일’이며, ‘남의 것’, 곧 하느님의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들을 나 자신의 욕심을 위해 움켜쥘 때, 우리는 ‘재물’의 종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들을 프리스카와 아퀼라처럼 복음을 위해, 가이오처럼 공동체를 위해 사용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이 됩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비웃는 바리사이의 자리에 머물지 맙시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받는 썩어 없어질 재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원한 가치를 선택합시다.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로마 16,16)라는 바오로의 권고처럼, 서로를 재물이 아닌 사랑으로 대하며, 우리를 영원한 영광으로 굳세게 하실 하느님께(로마 16,25-27 참조) 모든 찬미를 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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