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4일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핑계를 거절한 종, 사랑으로 가득 찬 집
오늘 복음은 하늘나라에서 벌어지는 큰 잔치에 대한 비유로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당신의 풍성한 행복의 식탁으로 초대하십니다. 이 얼마나 기쁘고 영광스러운 초대입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맨 처음 초대받은 사람들은 모두 거절합니다. 한 사람은 “밭을 샀는데”(루카 14,18) 가봐야 한다고 합니다. 내 사업, 내 재산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루카 14,19) 그것들을 부려봐야 한다고 합니다. 내 일, 내 소유물이 더 급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들었으니”(루카 14,20) 갈 수 없다고 합니다. 내 개인적인 삶, 내 관계가 하느님보다 우선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2천 년 전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매일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지 못하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주님, 오늘은 바빠서 기도를 못하겠습니다’, ‘주님, 지금은 돈 버는 게 더 중요해서 주일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주님, 제 가족 문제, 제 즐거움이 더 우선입니다’. 우리는 저마다의 ‘밭’과 ‘겨릿소’와 ‘가정사’를 핑계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가장 큰 기쁨의 잔치를 놓치고 맙니다.
주인은 이 거절에 분노합니다. 그러나 잔치를 취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종에게 명령합니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루카 14,21). 그리고 자리가 다 차지 않자, 다시 말씀하십니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루카 14,23). 하느님의 집은 텅 비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의 사랑은 너무나도 커서, 스스로 자격 있다 여기는 이들이 거절할 때, 오히려 세상의 눈으로는 자격 없어 보이는 이들, 소외되고 상처받은 이들을 향해 더욱 활짝 열립니다.
바로 이 ‘주인의 명령’을 온 삶으로 살아낸 분이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이십니다. 가롤로 성인은 16세기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스물셋의 젊은 나이에 추기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오늘 복음에서 핑계를 댄 사람들처럼, 모든 ‘밭’과 ‘겨릿소’를 다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며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느님의 초대에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주인의 명령을 수행하는 ‘충실한 종’이 되기를 선택했습니다. 당시 교회가 안일함과 세속화로 병들어 있을 때, 그는 교회의 개혁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특히 그가 밀라노의 대주교로 있던 시절, 흑사병이 도시를 덮쳤습니다. 귀족들과 관리들이 모두 성을 버리고 도망칠 때, 가롤로 성인은 단 한 사람의 ‘종’처럼 도시에 남았습니다.
그는 복음의 종처럼, 도시의 ‘한길과 골목’을 누비며 죽어가는 이들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는 가난한 이들, 병든 이들, 버려진 이들을 ‘억지로라도 데려다가’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했습니다. 자신의 막대한 재산을 팔아 굶주린 이들을 먹였고, 직접 시신을 수습했으며, 병자들에게 성사를 주며 그들의 마지막을 지켰습니다. 그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가졌지만,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의 잔칫집을 채우기 위해 자신을 불태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그 길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한 몸을"(로마 12,5) 이룬 지체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다른 ‘은사’를 주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가르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격려하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자선을 베푸는 은사를, 어떤 이에게는 자비를 실천하는 은사를 주셨습니다(로마 12,6-8 참조). 가롤로 성인이 자신의 은사를 하느님의 집을 채우는 데 온전히 사용했듯이, 우리도 우리의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그 실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로마 12,11). 이것이 바로 성 가롤로의 삶이었습니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로마 12,12). 흑사병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성인의 모습입니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로마 12,16). 밭과 겨릿소 생각에 도망친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 곁을 지킨 성인의 선택입니다.
하느님의 잔치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전히 자신의 밭과 겨릿소에 매여 초대를 거절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초대받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채, 거리에서 고통받는 이들도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당신의 ‘종’으로 파견하십니다. 우리가 가진 은사로, 우리가 가진 시간과 재물로, ‘성령으로 타올라’ 그들을 찾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핑계들을 내려놓고, 성 가롤로 보로메오처럼 내 이웃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용기를 청합시다. 우리가 한 영혼이라도 더 하느님의 집으로 데려올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하느님의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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