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21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가족

오늘 우리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自獻) 기념일을 지냅니다. 이 기념일은 성경에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오랜 교회의 전승에 바탕을 둔, 깊은 의미를 지닌 날입니다. 이 전승은, 성모님의 부모인 성 요아킴과 성녀 안나가 어린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마리아의 전 존재가 온전히 하느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그녀의 삶이 하느님의 특별한 계획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된 거룩한 ‘성전’이었음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이 ‘성전’의 신비가, 오늘 제1독서 즈카르야서의 예언과 연결됩니다. 즈카르야 예언자는 절망에 빠진 이스라엘을 향해, 기쁨에 차 외치라고 선포합니다.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즈카 2,14). ‘하느님께서 우리 한가운데에 오시어 머무르신다’는 것은 인류의 가장 큰 갈망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이제 당신께서 직접 선택하신 한 여인, ‘살아있는 성전’ 안에 머무르시기로 계획하셨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마리아의 자헌은, 하느님께서 머무실 수 있도록 티 없이 깨끗하게 준비된 ‘성전’의 시작을 보여줍니다. 마리아는 그녀의 전 생애를 통해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가장 거룩한 ‘시온의 딸’, ‘계약 궤’가 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거룩한 하느님의 성전이 되시고,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 분이 오늘 복음에서는 어찌하여 예수님께 외면당하는 것처럼 보일까요?

오늘 복음에서 누군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마태 12,47) 하고 알려드립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당황스런 대답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 12,48). 그리고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말씀하십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50).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맺는 참된 가족 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성모님께서 왜 진정으로 복되신 분인지를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성모님께서 위대하신 이유는, 그분이 단지 예수님을 낳으신 육신의 어머니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성모님께서 위대하신 이유는, 누구보다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마태 12,50)을 완벽하게 실행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삶 전체가 “예”였습니다. 성전에 자신을 봉헌한 순간부터, 천사의 아룀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응답하신 순간, 그리고 십자가 아래에서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극심한 고통을 받아들인 순간까지, 마리아의 전 생애는 오직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선언은, 성모님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모님을 우리 신앙의 최고 모델로 올려 세우시는 말씀입니다. "보아라, 나의 참어머니는 바로 저렇게 사는 사람이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를 향한 초대장입니다. 첫째, 즈카르야의 예언처럼, 하느님께서는 오늘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즈카 2,14) 하시며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 모두 하느님의 성령께서 머무시는 살아있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둘째, 복음 말씀처럼,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새로운 가족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초대에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요?

성모님처럼, 나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해야 합니다. 나의 시간, 재능, 계획 그리고 나의 뜻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의 고집이라는 우상을 부수고, 내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정돈하며 하느님께서 머무실 자리를 내어드릴 때, 우리는 성모님처럼 ‘살아있는 성전’이 됩니다. 우리가 내 뜻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삶을 선택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참된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하느님께 봉헌합시다. "주님, 저의 이기심과 교만을 부수시고, 당신께서 머무시기에 합당한 깨끗한 성전이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의 삶이 오직 당신의 뜻을 이루는 당신의 참된 가족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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