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10일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믿음의 겨자씨가 세상을 움직일 때
오늘 복음을 듣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덜컥 내려앉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너무나도 어렵고, 어쩌면 불가능해 보이는 두 가지 명령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의 외침은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외침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제 힘만으로는 도저히 저 사람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저의 이기심과 나약함으로는 남을 용서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 저에게 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는 믿음을 주십시오!’
그렇다면 살아있는 믿음은 어디에서 올까요? 오늘 제1독서 지혜서는 믿음의 본질을 이렇게 알려줍니다. "선량한 마음으로 주님을 생각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분을 찾아라"(지혜 1,1). 그것은 바로 올바른 생각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지혜서는 경고합니다. "비뚤어진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의 권능을 시험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로 드러난다. 지혜는 간악한 영혼 안으로 들지 않고 죄에 얽매인 육신 안에 머무르지 않는다"(지혜 1,3-4). 우리의 마음이 미움과 불평, 이기적인 계산이라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면, 우리는 결코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험하고 의심한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지혜 1,2 참조).
이것이 바로 오늘 기념하는 성 대 레오 교황님의 삶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입니다. 레오 성인이 살았던 5세기는 교회가 밖으로는 야만족의 침입으로, 안으로는 이단 사상이라는 ‘비뚤어진 생각’으로 무너져가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레오 교황님의 수많은 업적들 가운데 두 가지만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 레오 성인은 예수님께서 경고하신 ‘남을 죄짓게 하는 일’, 곧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 사상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는 ‘비뚤어진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올바른 생각’을 선포했습니다. 그가 칼케돈 공의회에 보낸 교의 서한은, 예수님께서는 참 하느님이시며 동시에 참 인간이시라는 우리 신앙의 초석을 굳건히 세웠습니다. 그는 신자들이 거짓 가르침에 빠지지 않도록 지켜낸 위대한 목자였습니다.
둘째, 레오 성인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로마를 향해 진격해오던 무자비한 훈족의 왕 아틸라 앞에, 교황은 무기 하나 없이 오직 하느님께 대한 믿음 하나만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평화’라는 기적을 이루어냈습니다. 그의 ‘순수한 마음’은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세상의 그 어떤 군대보다도 강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의 마음은 지금 ‘비뚤어진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아니면 주님을 향한 ‘순수한 마음’으로 채워져 있습니까? 우리의 삶에도 용서하기 힘든 ‘하루 일곱 번의 죄’가 있고,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수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리고 레오 성인의 시대처럼, 우리 사회도 분열과 혼란 속에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사도들의 기도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루카 17,5).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판단하는 대신,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 작은 믿음이 내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불가능해 보였던 용서의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그 믿음은 우리 가정과 사회라는 거대한 ‘돌무화과나무’를 절망의 흙에서 뽑아내어, 희망과 평화의 바다에 옮겨 심는 기적을 일으킬 것입니다.
성 대 레오 교황님, 오늘도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저희가 ‘올바른 생각’과 ‘순수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으며,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하느님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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