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당신의 마음은 타고 있습니까?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이 ‘불’과 ‘분열’의 영적인 의미를 명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그는 우리의 삶을 두 가지 길, 두 명의 다른 주인 아래 있는 삶으로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하나는 ‘죄의 종’으로 사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종’으로 사는 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과거에 어떤 주인을 섬겼는지 상기시킵니다. “여러분이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로움에 매이지 않았습니다”(로마 6,20). 그 결과는 무엇이었습니까? “여러분이 지금은 부끄럽게 여기는 그런 것들을 행하여 무슨 소득을 거두었습니까? 그러한 것들의 끝은 죽음입니다”(로마 6,21). 죄가 주는 자유는 결국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영원한 죽음으로 이끄는 거짓 자유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를 통해 우리는 주인을 바꾸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었습니다”(로마 6,22 참조). 이 새로운 삶이 가져오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2). 예수님께서 지르러 오신 ‘불’은 바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하느님의 자녀로 살게 하는 성령의 불, 정화의 불, 사랑의 불입니다. 이 불이 우리 마음속에 타오르기 시작할 때, 우리 안에서는 필연적으로 ‘분열’이 일어납니다. 과거의 나, 곧 죄의 종이었던 옛사람과,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가려는 새사람 사이의 치열한 영적 전투가 시작됩니다
나태하고 싶은 마음과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싸웁니다. 미워하고 싶은 마음과 용서해야 한다는 마음이 갈라섭니다. 세상의 것을 더 움켜쥐려는 욕심과 가난한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이 분열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적 분열입니다. 이 '거룩한 분열' 없이는 아무도 거룩함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내적인 불꽃이 밖으로 번져나갈 때, 세상과의 분열이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따르는 삶은 세상의 불의와 타협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은 세상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그대로 둘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외치는 삶은 세상의 거짓과 위선에 침묵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이 때로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심지어 갈등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려는 신앙인이 부정한 방법을 강요하는 직장에서 갈라서는 것, 생명을 존중하는 신앙인이 낙태를 당연시하는 문화와 갈라서는 것,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예고하신 ‘분열’입니다. 이 분열은 미움의 분열이 아니라, 빛이 어둠과 함께할 수 없기에 생기는 필연적인 갈라섬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의 마음속에 내가 지핀 불은 아직도 타오르고 있느냐?” 혹시 우리의 신앙이 너무 미지근해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세상과 아무런 갈등도, 내면의 아무런 번민도 없는 ‘안전하고 편안한’ 신앙에 만족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죄의 열매인 부끄러움과 죽음의 길에 다시 발을 들여놓고 있으면서, 스스로는 괜찮다고 위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미지근한 상태에 머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 마음이 당신을 향한 사랑으로, 복음을 향한 열정으로 활활 타오르기를 간절히 바라십니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죄의 종살이가 주는 대가는 ‘죽음’이지만,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로마 6,23)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의 선물을 향한 열망으로 우리 마음의 불꽃을 다시 지핍시다. 세상과의 적당한 타협을 거부하고, 우리 안에 거룩한 분열을 기꺼이 끌어안는 용기를 청합시다. 주님, 저희 마음에 성령의 불을 놓으시어, 옛사람을 태우고 새사람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당신의 진리 때문에 세상과 기꺼이 갈라서는 용기를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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