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누구의 종으로 살아가십니까?
혹시 귀한 것을 누군가에게 맡겨본 경험이 있나요? 잠시 집을 비우면서 화초에 물을 주거나 반려동물을 돌봐달라고 부탁할 때, 우리는 믿을 만한 사람을 신중하게 고릅니다. 그리고 그 부탁을 받은 사람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책임감을 가지고 그 일을 성실하게 수행합니다. ‘맡긴다’는 행위와 ‘맡는다’는 행위 사이에는 깊은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하느님의 관계를 ‘신뢰’의 관계, 곧 ‘주인과 관리인’의 관계로 설명하십니다. 주인은 종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맡기고 떠납니다. 그리고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9-40)
이 말씀을 들으면 덜컥 겁이 날 수 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주님께서 오셔서 내 삶을 심판하시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핵심은 우리에게 겁을 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신뢰하시기에 당신의 집인 이 세상을 왜 우리에게 맡기셨는지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주님, 이 비유를 저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루카 12,41)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질문을 되돌려 주십니다. “주인이 자기 집 종들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주게 할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는 어떻게 하는 사람이겠느냐?”(루카 12,42). 이 질문은 바로 오늘 우리 각자에게 던져지는 질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당신의 집을 돌보는 ‘관리인’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에게는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주인이 늦게 오리라 생각하고, 동료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며 취해 놉니다. 주인의 신뢰를 배신하고, 맡겨진 책임을 방탕과 폭력으로 채우는 어리석은 종입니다. 반면 다른 부류는, 주인이 언제 오시든, 늘 깨어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합니다.
반면, 하느님의 종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떻습니까? 세례를 통해 우리는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의로움의 종’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자유입니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는 굴레가 아니라, 우리를 거룩함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끄는 은총의 길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로마 6,22).
오늘 말씀은 우리를 선택의 자리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맡기신 시간과 재능, 사랑이라는 ‘양식’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어리석은 종처럼 나 자신의 쾌락과 이기심을 위해 탕진하며 ‘죄’를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슬기로운 관리인처럼, 주변의 배고픈 이웃들에게 기쁘게 나누어주며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습니까?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부담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책임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그만큼 크게 믿어주신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오늘, 누구의 종으로 살아갈 것인가?” 죄의 유혹이 찾아올 때마다, 바오로 사도의 외침을 기억합시다. “자기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하느님께 바치십시오”(로마 6,13). 우리의 시간과 말 그리고 우리의 손길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도구로 내어드릴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인이 언제 오시든 기쁘게 그분을 맞이하는 ‘성실하고 슬기로운 관리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죄의 종이 아니라, 기꺼이 당신께 순종하는 의로움의 종이 되어, 당신께서 맡기신 사랑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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