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17일 금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가면을 벗고 믿음으로 서는 용기

오늘 우리는 사자들의 밥이 되기 위해 로마로 끌려가면서도 “나는 하느님의 밀알입니다. 야수들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외쳤던 위대한 순교자,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를 기념합니다. 그의 삶은 오늘 우리가 들은 말씀이 어떻게 한 인간 안에서 살아있는 현실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군중 앞에서 제자들에게 먼저 말씀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루카 12,1). 누룩은 아주 적은 양으로도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위선이라는 작은 누룩은 우리의 신앙 전체를 속이 텅 빈 빵처럼 부풀려 버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의 문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기도하고, 단식하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하느님이 아니라,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하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가면이 언젠가는 반드시 벗겨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2).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까? 그가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서였을까요? 훌륭한 업적을 많이 쌓아서였을까요?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로마 4,3).

아브라함의 의로움은 그의 행위나 공로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을 신뢰했던 그의 ‘믿음’에서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약속을 온전히 믿고 자신의 삶을 내던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리사이들의 위선과 정반대에 있는 참된 신앙의 모습입니다. 위선이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나의 행위를 내세우는 것이라면, 믿음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그분의 은총에 기대는 것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노력해서 쟁취하는 월급이 아니라, 거저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 곧 은총이라는 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불법을 용서받고, 죄가 덮어진 사람들!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죄를 헤아리지 않으시는 사람!”(로마 4,7).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이냐시오 성인은 바로 이 ‘믿음으로 사는 삶’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안티오키아의 존경받는 주교였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의 지위와 명예를 지키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죽음의 길을 택했습니다. 로마로 압송되는 여정 중에 그는 여러 교회에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들에는 두려움이나 원망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불타는 사랑과 그분과 하나 되고자 하는 열망만이 가득합니다.

그는 세상 권력의 위협 앞에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주신 약속을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루카 12,4-7).

하늘을 나는 참새 한 마리, 우리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세심하게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었기에, 이냐시오 성인은 사자의 이빨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보여주기 위한’ 껍데기가 아니라, 죽음도 갈라놓을 수 없는 하느님과의 살아있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사람들 앞에서는 경건한 신자인 척하면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기도의 목적이 하느님의 뜻을 찾기 위함입니까, 아니면 그저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까? 이것이 바로 우리 안에 숨어있는 ‘바리사이의 누룩’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에게 위선을 버리고 참된 믿음으로 나아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아브라함처럼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의탁하는 믿음, 이냐시오 성인처럼 세상의 위협이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더 크게 보는 믿음을 청합시다.

우리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부족한 존재인지 깨달을수록, 우리를 거저 의롭게 해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은 더욱 크게 다가올 것입니다. 내 힘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모든 것을 아시고 돌보시는 하느님께 온전히 우리 자신을 맡겨드립시다. 그 믿음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고, 어떠한 시련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참된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저희도 주님 안에서 참된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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