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4월 8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부활을 만난 이들
부활 팔일 축제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와, 부활의 능력이 구체적인 치유로 드러나는 베드로의 기적을 함께 마주합니다.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를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등지고 떠나는 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꿈이 무너진 곳, 스승이 죽임을 당한 실패의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바닥만 보고 걷느라,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실패, 이별, 고통과 같은 인생의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기쁠 때뿐만 아니라, 가장 낙담하여 힘없이 걷는 그 길 위에서도 우리와 보조를 맞춰 함께 걷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의 슬픔이 눈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여셨습니까? 먼저 성경을 풀이해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탁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매일 참례하는 미사 전례의 구조입니다. 우리는 말씀 전례를 통해 차갑게 식은 마음을 데우고, 성찬 전례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미사 중에 평화를 느낀다면 이미 여러분 곁에 부활하신 주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는 성전 문 곁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은과 금 같은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베드로는 그에게 근본적인 치유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부활은 관념이 아닙니다. 부활은 앉아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걷게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권능입니다. 이 시대는 은과 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우리의 영혼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입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주님을 알아본 즉시, 밤이 깊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달려갔습니다. 슬픔의 길을 내려갔던 그들이 이제 기쁨의 길을 뛰어 올라갑니다. 이것이 부활을 체험한 이들의 변화입니다. 여러분을 주저앉게 만드는 '절망의 문'은 무엇입니까? 베드로처럼 당당하게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라고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웃에게 선포하십시오.
오늘 여러분의 식탁에 주님을 초대하십시오.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루카 24,29)라고 말씀드리는 순간, 평범한 일상은 거룩한 성찬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읽는 성경 말씀 속에, 여러분이 모시는 성체 안에, 그리고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내미는 따뜻한 손길 안에 살아 계십니다. “주님,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희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다시 일어서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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