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4월 7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부르심과 응답

부활 팔일 축제의 셋째 날입니다. 어제는 '달려가는 기쁨'에 대해 묵상했다면, 오늘은 '머무르는 사랑'과 '부르심'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우리 신앙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온통 사라진 시신과 과거의 슬픔에 고정되어 있었죠. 그래서 천사가 말을 걸어도,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등 뒤에 서 계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을 정원사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크거나 눈앞의 문제가 너무 무거우면, 바로 곁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게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주님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장황한 설명으로 당신의 부활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요한 20,16). 그 순간 마리아의 세상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정원사'가 '라뿌니'가 되는 기적은 논리가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군중 속의 하나로 보지 않으십니다. 내 이름, 내 아픔, 내 사정을 정확히 아시고 이름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도 기도 중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계신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나를 더이상 붙들지 마라"고 하십니다. 이는 과거의 예수님께 매달리지 말고, 이제 성령 안에서 모든 이와 함께하실 새로운 현존의 방식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즉시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렇게 외칩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 이 고백은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불타올라 회개한 삼천 명의 신자들에게로 이어집니다. 부활은 '아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이며, 그 본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제1독서의 사람들처럼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내 이름을 부르셨다면, 이제 우리도 그에 걸맞는 응답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십시오. 과거의 슬픔과 죄의 무덤 속에 머물러 있기를 거부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증언하십시오. 거창한 교리가 아니라, "내 삶에서 주님을 느꼈다"는 소박한 고백이 세상을 바꿉니다.

오늘 하루, 문득문득 주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시는 소리에 집중해 보십시오. 세상의 소음 때문에 그 음성을 놓치지 않도록 마음의 소음을 조금 낮춰보는 건 어떨까요?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 곁에서 정원사처럼 묵묵히 여러분의 영혼을 가꾸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 제 이름을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여기 있나이다. 말씀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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