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4월 2일 주님 만찬 성목요일

 

발을 씻어 주시고 빵이 되시는 분

오늘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거룩한 사흘인 '파스카 성삼일'의 문을 엽니다. 오늘 밤, 성당의 종소리는 잠시 멈추고 제대는 비워지며 우리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이라는 신비 속으로 깊이 침잠합니다.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두 가지 장면을 보여줍니다. 바로 '발을 씻어주시는 주님'과 '빵이 되신 주님'입니다.

오늘 복음은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요한 13,1). 여기서 ‘끝까지’는 시간적인 마지막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극치, 곧 당신의 전부를 내어주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이 '끝까지'의 사랑은 유다의 발을 씻어주는 것으로 시작해, 내일 십자가에서 피 한 방울까지 쏟아내시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주님의 사랑에는 ‘여기까지만’이라는 한계가 없습니다.

스승이요 주님이신 분이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채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을 꿇으십니다. 당시 발을 씻기는 일은 종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종이 하던 일이었습니다. 제자들은 당황했고 베드로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셨습니다.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요한 13,14). 주님이 보여주신 권위는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타인의 먼지를 닦아주는 겸손이었습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품격은 내 어깨에 힘을 줄 때가 아니라, 누군가의 아픔 앞에 내 무릎을 굽힐 때 드러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빵과 포도주를 들고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신비를 전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사랑을 추상적으로 가르치지 않으시고, 우리가 먹고 마실 수 있는 구체적인 음식으로 남기셨습니다. 성체성사는 주님의 죽음을 단순히 추억하는 행사가 아닙니다. 2,000년 전의 그 희생이 오늘 이 제대 위에서 다시 일어나는 신비입니다. 빵이 쪼개져 우리 몸에 모시게 되듯, 우리도 주님을 닮아 타인을 위해 기꺼이 쪼개지고 먹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초대입니다.

오늘 미사가 끝나면 성체는 수난 감실로 옮겨지고 성전은 정적에 잠깁니다. 이제 우리는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 흘려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머물게 됩니다. 오늘 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봅시다. “나는 오늘 누구의 발을 씻어주었는가?, 누구에게 내 발을 내밀며 씻겨달라고 군림했는가?”, “나는 주님의 몸을 모시며, 나 또한 누군가에게 생명을 주는 빵이 되겠다고 다짐했는가?”

예수님은 우리에게 거창한 이론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하셨을 뿐입니다. 이번 성삼일 동안,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밥이 되시고 종이 되신 그분의 사랑 앞에 머물며 우리 마음의 때를 씻어냅시다. “주님, 제 머리도 손도 아니라, 제 삶 전체를 씻어 주소서. 그리하여 저 또한 당신처럼 누군가를 위해 쪼개지는 빵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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