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평범함 속에 계신 하느님
사순 제3주간의 월요일입니다. 어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의 우물가에서 ‘생명의 물’에 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역시 그 흐름을 이어받아, 우리 영혼이 어떻게 치유되고 어떻게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시리아의 장수 나아만은 권세와 명예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나병’이라는 치명적인 아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예언자가 대단한 예식을 치러줄 줄 알았지만, 엘리사는 얼굴도 비치지 않고 “요르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십시오”라는 단순한 처방만 내립니다. 나아만은 처음에는 화를 냅니다. “내 나라에 더 깨끗한 강이 없어서 여기까지 왔느냐?”라며 자신의 체면과 상식을 앞세웠습니다. 그러나 종들의 권고에 마음을 굽히고 말씀에 순명했을 때, 그의 살은 어린아이 살처럼 깨끗해졌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 거창한 기적을 바라지만, 하느님은 사소하고 평범한 순명을 요구하십니다. 내 자존심을 꺾고 하느님의 방식에 나를 맡길 때, 비로소 진정한 영적 치유가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치유는 겸손한 순명을 통해 일어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고향 나자렛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십니다.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만 보았습니다. “우리가 저 사람 어릴 때부터 봤는데, 저 사람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하겠어?”라는 익숙함이 그들의 눈을 가렸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드리는 미사, 늘 곁에 있는 가족, 매일 읽는 성경 말씀이 너무 익숙해서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현존을 놓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익숙함 너머에서 하느님은 역사하십니다. 선입견과 편견을 버리지 않으면, 구세주를 곁에 두고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익숙함이라는 함정에 빠지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엘리야 시대의 사렙타 과부와 엘리사 시대의 나아만 장수의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혈통이나 신분이 아니라, 간절히 바라고 믿는 마음이 있는 곳에 머무십니다. “나는 성당에 오래 다녔으니까”, “나는 직책이 있으니까”라는 영적 우월감은 오히려 하느님의 은총을 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내가 부족함을 알고 하느님의 자비를 간절히 청하는 ‘이방인과 같은 마음’이 있을 때, 하느님의 기적은 시작됩니다.
나아만 장수가 씻었던 요르단 강은 대단한 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교만이라는 옷을 벗고 물에 몸을 던졌을 때 치유가 일어났습니다. 이번 사순 시기, 우리도 내 안의 나병을 들여다봅시다. 남보다 우월하다는 교만, 상대를 다 안다고 치부해버리는 편견, 내 방식대로 하느님이 움직여주길 바라는 고집, 이 묵은 허물들을 오늘 하느님 말씀이라는 강물에 던져버립시다.
예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소홀히 대했던 이웃의 얼굴 속에, 따분하게 느껴졌던 일상의 의무 속에 숨어 계십니다. 오늘 하루, 마음의 눈을 닦고 우리 곁에 오신 주님을 새롭게 발견하는 은총의 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 준 대로, 요르단 강에 내려가서 일곱 번 몸을 담갔다. 그러자 그는 어린아이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2열왕 5,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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