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5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담장을 넘는 사랑

사순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오늘 복음은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통해 강렬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믿고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가 라자로를 때리거나 쫓아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는 그저 자기 집 대문 앞에 누워 있는 병든 거지를 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는 매일 화사한 옷을 입고 즐겁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의 죄는 적극적인 악행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었습니다. 바실리오 성인은 이런 말을 남기셨습니다. “그대가 쌓아두고 쓰지 않는 빵은 배고픈 이의 것이고, 그대가 옷장에 걸어둔 옷은 헐벗은 이의 것이며, 그대가 땅에 묻어둔 은전은 가난한 이의 것이다.” 내 담장 바로 밑에 있는 이웃의 굶주림을 외면하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재화를 독점하는 조용한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비유 속에서 우리는 부자의 이름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부자’로 불릴 뿐입니다. 반면 거지의 이름은 ‘라자로’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라자로’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께서 도우신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거지의 이름은 궁금해하지 않지만, 하느님의 장부에는 정반대로 기록됩니다. 세상의 부와 명예는 죽음과 함께 사라지지만,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을 신뢰한 이의 이름은 하느님의 기억 속에 영원히 각인됩니다.

죽음 이후, 부자는 아브라함에게 라자로를 보내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찍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대답합니다.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루카 16,26).  이 넘을 수 없는 구렁은 부자가 죽은 뒤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 생전에 자기 집 대문 앞에 라자로를 방치하며 스스로 만들었던 심리적 거리와 무관심의 벽이 사후에 영원한 심연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이웃과 나누지 못한 사랑은, 결국 우리가 하느님께 가는 길을 막는 거대한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이 구렁을 메워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사람에게 의지하는 자와 스러질 몸을 제힘인 양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예레 17,5). 부자는 자신의 재산과 담장을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라자로는 하느님만을 의지했습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 삶의 담장을 낮추는 시기입니다. 

혹시 내 집 대문 앞에, 혹은 내 마음의 문 앞에 내가 외면하고 있는 ‘라자로’는 누구입니까? 나에게 매번 핀잔을 듣는 서툰 부하 직원일 수도 있고, 명절에만 겨우 전화 한 통 드리는 홀로 계신 부모님일 수도 있으며, 사회에서 소외된 이주 노동자나 가난한 이웃일 수도 있습니다. 죽어서 기적을 청하기보다, 살아서 내 곁의 형제에게 빵 한 조각을 나누는 것이 가장 확실한 구원의 길입니다. “주님을 신뢰하고 그의 신뢰를 주님께 두는 이는 복되다”(예레 17,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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