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28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

이제 내일이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 시작됩니다. 사순 시기의 고요한 참회는 끝나고, 이제 주님의 수난이라는 거대한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서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폭풍의 도화선이 된 유다 지도자들의 모임의 결정적 순간을 보여줍니다.

대사제 카야파는 냉혹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때문에 민족 전체가 로마의 탄압을 받을까 두려워하며 말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요한 11,50).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정치적 이익과 생존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말을 놀라운 관점으로 해석합니다. 

그가 자기 생각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수님이 민족을 위해 죽으실 것을 예언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악한 마음으로 던진 돌조차, 하느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디딤돌로 바꾸어 사용하십니다. 우리 삶에 닥친 이해할 수 없는 악재나 타인의 악의조차, 결국 하느님의 큰 그림 안에서는 선을 이루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하느님의 간절한 꿈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않고, 다시는 결코 두 왕국으로 갈라지지 않을 것이다"(에제 37,22). 죄는 본질적으로 '갈라놓는 것'입니다. 나와 하느님을 갈라놓고, 이웃과 나를 갈라놓으며, 내 마음조차 갈갈이 찢어놓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은 흩어진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사랑의 접착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다 민족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하나로 모으시려고"(요한 11,52)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미사와 기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이유는, 그분이 당신의 생명을 바쳐 우리 사이의 장벽을 허무셨기 때문입니다.

지도자 회의에서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잠시 유다 광야 가까운 곳 에프라임으로 물러나 제자들과 머무십니다. 폭풍 전야의 고요입니다. 예수님은 두려워서 도망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서 정하신 때를 기다리며 마지막 준비를 하신 것입니다. 성주간을 하루 앞둔 오늘, 우리도 에프라임으로 물러나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세상의 소란과 비난, 분주한 계획들에서 잠시 손을 떼고 주님 곁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래야만 내일부터 시작될 처절한 사랑의 길을 주님과 함께 끝까지 걸어갈 수 있습니다.

세상은 효율과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희생시키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시키십니다. 대사제 카야파는 "그가 죽어야 우리가 산다"고 했지만,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너희가 산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흩어놓는 걱정은 무엇인가요? 여러분과 이웃 사이를 갈라놓는 미움은 무엇인가요? 오늘 우리의 흩어진 마음들을 주님 앞에 내어놓으면 좋겠습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당신의 품 안으로, 그리고 공동체의 사랑 안으로 다시 모으고 싶어 하십니다. 내일부터 시작될 성주간, 그분의 '하나 되게 하시는 죽음' 속으로 우리 모두 함께 경건히 걸어 들어갑시다. 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주님은 우리를 지켜 주시리라(화답송).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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