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17일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
사순 제4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생명을 주는 물의 이미지를 보여줍니다. 에제키엘 예언자가 본 환시 속의 물은 성전에서 흘러나와 죽음의 바다를 생명의 바다로 바꾸고, 복음의 벳자타 못은 치유의 희망이 서린 장소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물 자체가 아니라, 물가에서 38년 동안이나 소외되어 있던 한 사람의 고립입니다.
벳자타 못가에는 수많은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그들은 물이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인공인 병자의 대답은 너무나 서글픕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요한 5,7). 38년이라는 긴 세월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고, 경쟁에서 밀려난 그는 철저히 혼자였습니다. 우리 삶에도 이런 순간이 있습니다. '누구 한 명이라도 나를 도와준다면', '환경만 조금 따라준다면' 하며 남을 탓하거나 상황을 원망하며 주저앉아 있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다가가 묻습니다.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 5,6). 당연한 질문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그의 의지를 깨우는 질문입니다. 38년 동안 앓다 보면 병은 어느새 나의 정체성이 되고, 낫고 싶다는 간절함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더 커지기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못에 들어가는 방식을 고집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의 체념을 뚫고 들어가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요한 5,8) 하고 직접 명령하십니다. 기적은 물이 움직일 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마음에 닿았을 때 일어났습니다.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이 본 물은 성전 오른쪽 문턱 아래에서 흘러나옵니다. 처음에는 발목, 다음에는 무릎, 그다음에는 허리까지 차오르더니 마침내 사람이 헤엄쳐야 할 만큼 큰 강이 됩니다. 하느님의 은총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는 것 같지만, 강물이 닿는 곳마다 죽었던 바닷물이 살아나고 고기가 생겨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습니다. 벳자타의 병자가 만난 예수님이 바로 살아있는 성전이셨습니다. 그분에게서 흘러나온 자비의 말씀이 38년 된 절망의 땅을 생명의 땅으로 바꾸어 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못'가에 누워 있을까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고립된 채 남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나의 죄와 상처를 보며 '이건 어쩔 수 없어'라고 포기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물이 출렁거리기를 기다리지 말고, 당신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의 은총은 특정 시간과 장소, 특정 조건에 매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안의 성전 문턱에서는 생명의 강물이 흐르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내 힘으로 일어서려 애쓰기보다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건강해지고 싶으냐?"(요한 5,6). 이 물음에 여러분의 온 마음을 담아 대답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낡은 들것을 치우시고, 여러분을 새로운 생명의 길로 걷게 하실 것입니다.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에제 47,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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