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8일 연중 제5주일
녹아 들어야 빛나는 삶
지난 주일에 ‘참행복’을 선포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 신앙인의 정체성을 아주 구체적인 사물 두 가지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바로 ‘소금’과 ‘빛’입니다. 너무나 익숙한 말씀이지만, 곱씹어 볼수록 두렵고도 영광스러운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소금이 되도록 노력해라” 하지 않으시고, 단정적으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하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미 소금이고 빛인 우리가 그 기능을 잃으면 어떻게 되는지, 오늘 말씀을 통해 묵상해 봅시다.
음식에 소금을 넣었는데 소금 알갱이가 그대로 씹힌다면 그 음식은 실패한 것입니다. 소금의 사명은 ‘녹는 것’입니다. 형체는 사라지고 음식 재료들 사이에 스며들어,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주는 것이 소금의 역할입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정이나 직장에서 “내가 이런 사람이야! 우습게 보지마!” 하고 뻣뻣하게 굴며 내 주장만 내세운다면, 그것은 녹지 않은 소금 덩어리와 같습니다. 주변 사람들을 짜증 나게 할 뿐입니다. 나의 고집이 녹고, 나의 이기심이 녹아서 공동체 안에 평화가 스며들게 하는 것, 내가 희생함으로써 다른 이들을 돋보이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소금의 ‘짠맛’, 곧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비결입니다. 소금은 자취를 감출 때 제맛을 냅니다.
빛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단순히 착하게 웃는 것일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빛이 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줍니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너의 빛이 새벽빛처럼 터져 나오고 너의 상처가 곧바로 아물리라”(이사 58,7-8). 빛은 추상적인 관념이 아닙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끼 사는 것, 힘든 동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소외된 이웃에게 관심을 갖는 구체적인 행동이 곧 빛입니다.
우리가 착한 행실을 할 때, 사람들은 우리를 칭찬하는 것을 넘어 “저 사람을 보니 정말 하느님이 계신 것 같아” 하고 느끼게 됩니다.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 이것이 빛의 목적입니다. 빛 자체는 주목받지 않아도, 빛 때문에 사물이 보이듯, 우리 행실을 통해 하느님이 보여야 합니다. 빛은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어떻게 했는지 고백합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1코린 2,1). 오히려 약하고 두렵고 떨렸다고 말합니다(1코린 2,3 참조). 하지만 그가 빛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령의 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을 잘해서 저 사람을 개종시켜야지” 하는 교만은 빛을 가립니다. 투박하고 부족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다가갈 때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빛을 비추십니다.
소금과 빛의 공통점은 ‘자신을 소모한다’는 것입니다. 소금은 녹아서 사라져야 맛을 내고, 촛불은 자신을 태워야 빛을 냅니다. 희생 없이는 맛도, 빛도 없습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머무는 자리에서 딱 한 번만 녹아 보십시오. 화가 날 때 참는 것으로 녹아드십시오. 귀찮을 때 먼저 움직이는 것으로 타오르십시오. 이 작은 희생이 여러분의 가정을 맛깔나게 만들고, 세상을 환하게 비출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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