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6일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하느님 눈치 보기

오늘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순교한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죽음 앞에서도 찬미가를 부르며 끝까지 복음을 선포했던 그들의 용기는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 그리고 제1독서의 다윗과 깊게 연결됩니다.

오늘 전례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화려한 왕궁에 살지만 눈치를 보는 헤로데, 감옥에 갇혀서도 당당한 요한,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더 강한 사람일까요?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비극적인 죽음을 다룹니다. 여기서 가장 모순적인 인물은 헤로데입니다. 그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했으며, 그의 말을 듣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헤로데는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집니다. 자신의 생일 잔치에서 춤을 춘 딸에게 무엇이든 주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임금은 몹시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라 그의 청을 물리치고 싶지 않았다(마르 6,26). 헤로데가 요한을 죽인 칼은 군사의 칼이 아니라, 남의 시선, 곧 체면이라는 칼이었습니다. 그는 ‘손님들 앞에서 내 말이 우습게 들리면 어떡하지?’라는 체면 때문에, 자신의 양심과 의인을 죽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권력을 가졌지만 남의 눈치를 보느라 진실을 외면하는 것, 이것이 세상의 비겁함입니다. 체면에 갇히면 양심을 죽이게 됩니다.

반면,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는 다윗을 칭송합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집회 47,8). 다윗은 주님을 사랑했기에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했고, 죄를 지었을 때도 솔직히 회개했습니다. 오늘 기념하는 바오로 미키 성인과 동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혹독한 박해 속에서 십자가에 매달렸지만, 그곳을 마지막 제단으로 삼았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그들은 다윗처럼 하느님을 찬미하고, 자신을 죽이는 이들을 용서했습니다. 헤로데는 화려한 잔치에서도 괴로워했지만, 순교자들은 십자가 위에서도 기뻐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상황이 좋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하기에 어떤 상황에서도 찬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찬미는 고통 속에서 완성됩니다.

우리 삶에도 헤로데의 식탁과 같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신앙인임을 밝혀야 할 자리에서 분위기 때문에 침묵하기도 하고, 양심에 찔리지만, 남들이 다 하니까 괜찮다고 타협하기도 하고, 하느님의 뜻보다 사람들의 평판을 더 걱정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체면 때문에 괴로워하는 헤로데가 될 것인가, 아니면 진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요한과 순교자들이 될 것인가? 지금 당신은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나요? 

오늘 하루, 우리의 시선을 사람에게서 하느님께로 돌립시다. 세상의 시선에 맞추다 보면 내 영혼이 병들지만, 하느님의 눈을 바라보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용기가 생깁니다. 순교자들은 피를 흘려 증거했지만, 우리는 일상의 정직함과 작은 용기로 백색 순교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찬미의 노래를 불렀으며 자신을 지으신 분을 사랑하였다(집회 47,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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