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26일 사순 제1주간 목요일

 

기도의 문을 여는 절박함

사순 시기의 여정 안에서 우리는 기도의 중요성을 계속 듣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 마음 한구석에는 이런 의심이 있습니다. '정말 기도하면 들어주실까? 지난번에 내가 그렇게 간절히 원했던 건 안 들어주셨는데….' 오늘 전례는 우리가 왜 기도해야 하며, 어떤 태도로 기도해야 하는지, 그리고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의 에스테르 왕비는 민족이 몰살당할 위기 앞에서 화려한 의복을 벗고 하느님 앞에 엎드립니다. 그녀의 기도가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함 때문입니다. 그녀는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에스 4,17)라고 고백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힘을 잃는 이유는, 하느님 말고도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기도해 보고 안 되면 돈으로 해결하지 뭐”, “안 되면 사람을 찾아보지 뭐.” 이런 ‘플랜 B’를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온전히 하느님께 매달리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세상의 동아줄을 놓고, 오직 당신의 손길만을 바라볼 때 가장 강력하게 일하십니다.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습니다”라는 절박함이 기도의 문을 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청하여라, 찾아라, 문을 두드려라” 하고 3단계로 강조하시며 기도를 독려하십니다. 그러면서 아주 중요한 비유를 드십니다.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9-11).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때로 우리가 청한 것이 ‘돌’이나 ‘뱀’이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칼을 달라고 떼를 쓰면 부모는 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 곧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때로는 거절도 응답이며,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과정임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자판기’가 아니라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에 대한 가르침을 유명한 ‘황금률’로 마무리하십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갑자기 뜬금없는 도덕적인 말씀으로 들리나요? 아닙니다. 이것은 기도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제 청을 들어주세요”라고 매달립니다. 그런데 정작 내 곁에 있는 이웃이 도움을 청할 때 나는 귀를 닫고 있다면, 어떻게 하느님께 내 말을 들어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기도의 통로는 사랑의 통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웃에게 너그러울 때, 하느님의 은총도 나에게 막힘없이 흘러들어옵니다. 기도의 응답은 관계 안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에스테르처럼 간절하게, 그리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당신은 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이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혹시 누군가 여러분에게 부탁을 한다면, 거절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십시오. “내가 저 사람의 청을 들어주는 것이, 곧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오늘 여러분의 두드림으로 천국 문을 활짝 열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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