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24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열매 맺는 기도

사순 시기를 보내며 우리는 모두 기도를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기도가 하느님과의 대화가 아니라, 나의 불안함을 달래기 위한 혼잣말의 반복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주십니다.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완벽한 기도로 알려진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바치는 기도의 태도를 점검해 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을 설득해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말을 많이 하고, 설명도 길게 하고, 했던 말을 또 하며 하느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빈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내 사정을 브리핑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이미 다 알고 계신 아버지께 내 마음을 열고, 그분의 뜻을 신뢰하며 내어맡기는 시간입니다. 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 안에 불안이 많다는 증거일 수 있습니다. 기도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나의 말은 허공에 흩어지는 빈말이 되기 쉽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다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아름다운 비유를 들려줍니다.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이사 55,10). 비가 땅에 스며들어 생명을 키우듯,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스며들어 변화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니 내 말을 쏟아내느라 바쁜 기도를 멈추고, ‘듣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메마른 땅이 비를 머금듯, 하느님의 말씀이 내 안에 스며들도록 침묵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에는 우리가 바라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한 구절은 우리를 두렵게 만듭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소서.” 이 기도는 조건부 기도입니다. “제가 형제를 용서한 딱 그만큼만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이 기도는 나를 단죄해 달라는 기도가 되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가 단순히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삶의 용서’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용서는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 안으로 들어오는 통로를 만드는 작업입니다. 미움으로 막혀 있으면 은총의 비가 스며들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습관적으로 외던 주님의 기도를 천천히 바쳐봅시다. 말을 많이 하려고 애쓰지 말고, 대신 “아버지” 하고 부를 때 느껴지는 그분의 사랑에 머무십시오. 그리고 “저희가 용서하오니” 부분에서 턱 막히는 어떤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다면,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오. “주님, 제 힘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의 말씀이 제 안에 비처럼 내려, 굳어진 제 마음을 부드럽게 적셔 주십시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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