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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2월 20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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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단식 사순 시기의 첫 번째 금요일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만 14세 이상 모든 신자가 육고기를 먹지 않는 금육을 지키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가 단순히 고기를 안 먹고, 밥을 덜 먹는 행위 자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강하게 경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배 속을 비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채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1독서 이사야서는 단식에 대한 통렬한 가르침을 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 항변합니다. “저희가 단식하는데 왜 보아 주지 않으십니까? 저희가 고행하는데 왜 알아주지 않으십니까?” (이사 58,3). 이에 대한 하느님의 대답은 충격적입니다. “ 보라, 너희는 너희 단식일에 제 일만 찾고 너희 일꾼들을 다그친다.  보라, 너희는 단식한다면서 다투고 싸우며 못된 주먹질이나 하고 있다 ” (이사 58,3-4). 그들은 밥은 굶었을지 몰라도, 배고픔 때문에 예민해져서 일꾼들을 닥달하고, 이웃과 싸웠습니다. 이것은 단식이 아니라 종교적 다이어트와 신경질일 뿐입니다. 혹시 우리도 오늘 금육을 지킨답시고, 메뉴 때문에 가족에게 투정을 부리거나 “나 지금 힘들게 희생하고 있어”라며 유세를 떨고 있지는 않나요? 사랑이 빠진 희생은 하느님 앞에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배고프다고 짜증 내는 단식은 무효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께서 진짜 바라시는 단식의 정의를 내려줍니다. “ 내가 좋아하는 단식은 이런 것이 아니겠느냐?  불의한 결박을 풀어 주고 멍에 줄을 끌러 주는 것,  억압받는 이들을 자유롭게 내보내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 양식을 굶주린 이와 함께 나누고  가련하게 떠도는 이들을 네 집에 맞아들이는 것,  헐벗은 사람을 보면 덮어 주고  네 혈육을 피하여 숨지 않는 것이 아니겠느냐? ” (이사 58,6-7). 진정한 단식은 ‘이동’입니다. 나에게 들어갈 몫을 줄여서, 그것이 필요한 이웃에게로 흘...

[묵상] 2026년 2월 19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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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선택하는 길 어제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으며 '사순 시기'라는 은총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이 여정의 목적과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인생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임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외치고, 예수님은 “나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킬 것인가”를 묻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장하게 말합니다. “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 ” (신명 30,15.19). 누가 감히 죽음과 불행을 선택하겠습니까? 모두가 행복을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속는 이유는, 죽음이 달콤한 사탕처럼 행복의 가면을 쓰고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당장 화를 내면 속이 시원할 것 같고, 참으면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내 욕심을 채우면 기쁠 것 같지만, 결국은 영혼이 병듭니다. 모세는 눈앞의 쾌락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곧 생명임을 강조합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명을 선택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루카 9,23). 여기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거나 학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안의 거짓된 자아, 곧 ‘내 뜻대로 다 되어야 한다’는 고집과 이기심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내 고집이 죽어야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살아납니다.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살고, 내가 양보해야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자기의 부인(denial)에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 중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는 “...

[묵상] 2026년 2월 18일 재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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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으로 하느님 만나기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얹으며 은총의 사순 시기를 시작합니다. 사제가 신자들의 이마에 재를 바르며 건넬 말씀,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는 우리 인생의 가장 확실한 진실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먼지와 같은 흙으로 빚어졌고, 생명인 하느님의 숨결이 들어와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숨결이 빠져나가면 우리는 한 줌의 먼지에 불과합니다. 오늘 재의 수요일은 우리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날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요엘 예언자는 외칩니다. “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 돌아오너라 ” (요엘 2,13). 이스라엘 사람들은 슬플 때 옷을 찢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언자는 묻습니다. 겉옷만 찢고 속마음은 그대로라면 무슨 소용이냐는 것입니다. 사순 시기를 시작하며 우리는 “술을 끊겠다”, “군것질을 안 하겠다” 같은 결심을 합니다. 좋은 일입니다만, 그것이 단순히 다이어트나 자기 만족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내가 포기한 즐거움의 자리에,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향한 갈망이 채워져야 합니다. 형식적인 희생이 아니라, 돌처럼 굳은 내 마음을 깨뜨리는 진정한 회개가 필요합니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 기도, 단식이라는 세 가지 실천을 말씀하시며, 반복해서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 (마태 6,4)를 강조하십니다. 그리고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자랑해라”, “증명해라”, “좋아요를 받아라” 하고 부추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생활조차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연기할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화장(make up)입니다. 그러나 사순 시기는 영적인 화장을 지우는 시간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 곧 내 양심 깊은 곳에서 나의 부족함, 나약함 그리고 죄와 같은 민낯을 하느님께 솔직하게 보여드리는 것입니다. ...

[묵상] 2026년 2월 17일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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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의 근원 오늘은 민족 고유의 명절, 설입니다. 오랜만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고, 먼저 떠나신 조상님들을 기억하며, 새해의 희망을 다짐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지만,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한 그릇을 먹고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설 명절 미사의 말씀들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인 민수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 (민수 6,24-25). 설날 아침, 우리는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며 복(福)을 빕니다. 하지만 인간이 줄 수 있는 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덕담은 해줄 수 있어도, 생명과 평화를 직접 줄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복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주시는 것, 곧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무는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조상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도, 그분들이 하느님의 빛나는 얼굴을 마주 뵙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는 복의 뿌리는 하느님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돈을 얼마 모으고, 어디 곳에 여행도 가고….” 하지만 오늘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 (야고 4,14). 이 말씀은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겸손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 (야고 4,15)라고 고백하며 하루하루를 선물로 받아들이...

[묵상] 2026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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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근육 키우기 오늘부터 제1독서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의 지침서입니다. 오늘 전례는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작부터 우리dml 상식을 뒤집는 말씀을 던집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야고 1,2). 세상 사람들은 시련을 피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시련이 닥치면,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일이 생기지?' 하며 원망합니다.  하지만 야고보 사도는 시련이 믿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운동선수가 힘든 훈련을 통해 기록을 단축하듯, 신앙인은 시련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인내가 우리를 영적으로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힘,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느님께 청하라고 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다” 고 합니다(야고 1,6 참조). 상황이 좋으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가, 조금만 힘들어지면 “하느님이 계시긴 한가?” 하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얄팍한 신앙을 꼬집는 말씀입니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파도에 휩쓸려 갈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려는 마음은 없고, 단지 자신들의 호기심을 채우거나 예수님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마술 쇼 같은 기적을 원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마르 8,12). 그분은 왜 탄식하셨을까요? 이미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배고픈 이들에게 양식을 주어 그들을 배불리셨음에도, 사랑의 표징은 보지 않고 “더 센 거를 보여줘”라고 요구하는 그들의 완고함 때문입니다. 눈앞에 ...

[묵상] 2026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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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가 만드는 기적 한 주간을 마무리하는 토요일입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는 슬라브 민족의 사도이신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인간이 미래에 대한 불안을 마주했을 때 취하는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보여줍니다. 하나는 두려움 때문에 계산하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 때문에 맡기는 태도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예로보암 임금은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왕권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늘 불안했습니다.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제사를 지내러 갔다가, 마음이 변해서 나를 죽이면 어떡하지?’(1열왕 12,27 참조). 이 불안감 때문에 그는 치명적인 죄를 저지릅니다. 하느님을 믿는 대신, 자기 권력을 지키기 위해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 (1열왕 12,28). 그는 편리함을 미끼로 백성들을 타락시켰습니다. 예로보암의 죄는 하느님을 몰라서가 아니라, 내 미래를 내가 통제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우리도 미래가 불안할 때, 하느님께 의탁하기보다 통장 잔고, 인맥 혹은 점집과 같은 나만의 금송아지를 만들어 위안을 삼으려 하지는 않나요? 불안은 '우상'이라는 가짜 신을 만들어 냅니다. 반면,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사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닌 군중이 굶주리게 되자, 그분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 저 군중이 가엾구나.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머물렀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저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저들 가운데에는 먼 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 (마르 8,2-3). 예수님의 행동 원리는 정치적 계산이 아니라 측은지심입니다. 제자들은 “ 이 광야에서 누가 어디서 빵을 구해...

[묵상] 2026년 2월 13일 연중 제5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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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닫힌 관계를 여는 주님의 탄식 한 주간을 마무리해가는 금요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찢어짐’과 ‘열림’이라는 두 이미지를 통해 우리 삶을 비추어 줍니다. 한쪽에서는 나라가 쪼개지는 비극이 일어나고, 다른 쪽에서는 닫혀있던 귀와 입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예언자 아히야는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중 열 조각을 예로보암에게 줍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분열의 원인은 단순한 정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이 하느님께 등을 돌리고 마음을 닫아버린 결과였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사람 사이의 관계도, 나라의 일치도 모두 조각나버린 것입니다. 우리 가정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이신 하느님이 빠지고 각자의 욕심만 남으면, 관계는 옷감처럼 쉽게 찢어지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십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독특합니다. 군중 한가운데서 "장애가 없어져라!" 하고 외치신 것이 아니라, “ 그를 군중에게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 (마르 7,33) 치유하십니다. 세상의 소음과 사람들의 시선에서 벗어난 둘만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이 치유되려면, 시끄러운 세상 소리를 잠시 끄고 예수님과 일대일로 만나는 침묵의 자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은 당신의 손가락을 우리 귀에 넣으시고, 생명력으로 상징되는 당신의 침을 발라 주시며 우리와 깊이 접촉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마르 7,34)  말씀하십니다. “에파타!” ( 마르 7,34).  예수님의 한숨은 체념이 아닙니다. 꽉 막혀있는 인간의 고통을 당신의 가슴으로 깊이 느끼시는 측은지심의 탄식이자, 사랑의 신음입니다. 꽉 닫힌 병뚜껑을 딸 때 힘을 주며 숨을 내뱉듯이, 예수님께서는 죄와 상처로 꽉 막힌 우리의 영혼을 여시기 위해 당...

[묵상] 2026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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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교만과 이방 여인의 겸손 오늘 전례는 아주 대조적인 두 인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한 명은 지혜의 왕이었으나 결국 어리석게 무너진 솔로몬 이고, 다른 한 명은 무시받던 이방인이었으나 예수님의 감탄을 자아낸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 입니다.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의 방향과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솔로몬의 쓸쓸한 말년을 전합니다. 젊은 시절, 하느님께 '듣는 마음'을 청했던 지혜로운 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명확히 짚어줍니다. “ 솔로몬 임금이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 ” (1열왕 11,4). 솔로몬의 타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작은 타협들이 모여, 결국 하느님을 향했던 마음이 조각나버린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정략 결혼을 통해 안정을 꾀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잃고 나라가 두 동강 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우리가 '나는 세례 받았으니 괜찮아'라고 자만하며 돈, 명예, 쾌락과 같은 세상의 가치와 적당히 타협할 때, 우리 마음도 솔로몬처럼 서서히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나뉘는 순간 무너지게 됩니다. 반면 오늘 복음의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그녀는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나 차갑고, 심지어 모욕적으로 들립니다. “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 (마르 7,27). 여기서 ‘자녀’는 유다인, ‘강아지’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사람 차별합니까?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 하고 화를 내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가졌던 왕의 자존심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존심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

[묵상] 2026년 2월 11일 연중 제5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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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의 정결 오늘은 연중 제5주간 수요일이며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입니다. 또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세계 병자의 날입니다. 1858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가난한 소녀 베르나데트에게 발현하신 성모님은 회개와 기도를 요청하시며, 치유의 샘물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오늘 전례는 ‘지혜를 찾는 열정’과 ‘마음의 정결’이라는 주제를 통해, 우리 영혼이 진정으로 건강해지는 비결을 알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는 스바 여왕이 등장합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지혜를 직접 듣기 위해 엄청난 보물을 싣고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그녀는 솔로몬의 말을 듣고 넋을 잃을 정도로 감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 주 임금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이 마음에 드시어  임금님을 이스라엘의 왕좌에 올려놓으셨으니 찬미받으시기를 빕니다 ” (1열왕 10,9). 이방인 여왕은 지혜를 찾아 먼 길을 왔는데, 정작 복음 속 바리사이들은 지혜 자체이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의 관심은 진리가 아니라 손 씻는 예식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르드의 베르나데트 성녀도 스바 여왕처럼 화려하지 않았고, 배운 것도 없는 가난한 소녀였지만, 그녀에게는 하느님을 향한 순수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 마음이 성모님을 만나는 통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미사에 참석할 때 어떤 마음으로 옵니까? 스바 여왕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설렘과 갈망이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신앙의 핵심을 찌르는 말씀을 하십니다. “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 (마르 7,15). 사람들은 바이러스나 오염된 음식이 우리 몸을 병들게 한다고 걱정합니다. 물론 육체적 건강을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하지만 영혼을 죽이는 바이러스는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다고 예수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