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사랑의 빵을 쪼개십시오

오늘 전례의 주제는 명확합니다. 바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진리가 어떻게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우리 신앙의 대전제를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그렇다면 ‘사랑이신 하느님’은 배고프고 지친 인간을 어떻게 대하실까요? 오늘 마르코 복음이 생생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딴곳까지 당신을 쫓아온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습니다. 그들이 마치 목자 없는 양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은 단순히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동정이 아니라,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깊은 연민과 아픔을 느끼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날이 저물자, 제자들과 예수님 사이에 현실을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충돌합니다.

첫째, 제자들의 태도는 ‘합리적인 계산’과 ‘회피’입니다. 제자들은 말합니다.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저들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십시오(마르 6,35-36). 제자들의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매우 이성적이고 현실적입니다. 그 많은 사람을 먹이려면 이백 데나리온이라는 거금이 필요한데, 그들에게는 그런 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돌려보내자고 제안합니다. 곧, 각자 알아서 해결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태도는 ‘책임’과 ‘나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계산적인 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십니다.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예수님은 돈이 얼마나 필요한가를 묻지 않으시고,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가서 보아라(마르 6,38) 하고 물으십니다. 기적은 없는 것을 한탄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가지고 있는 작고 보잘것없는 것을 내어놓을 때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 주게 하셨습니다. 사랑의 핵심은 ‘빵을 쪼갬’에 있습니다. 빵이 쪼개지지 않으면 덩어리로 남을 뿐이지만, 쪼개지고 부서질 때, 수천 명을 먹이는 생명의 양식이 됩니다. 내 시간, 내 자존심, 내 소유를 쪼개지 않고서는 이웃을 먹일 수 없습니다. 빵을 쪼갠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남자만도 오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인간의 계산으로는 부족함뿐이었지만,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는 차고 넘침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는 수많은 ‘목자 없는 양’들을 만날 것입니다. 직장 동료, 가족 혹은 도움이 필요한 이웃일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 마음속의 계산기가 작동할지 모릅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내가 왜 저 사람까지 챙겨야 해?”, “이건 비합리적이야.” 그 순간,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가 가진 작은 미소, 따뜻한 위로의 말, 잠시 시간을 내어 들어주는 경청과 같은 작은 빵 다섯 개를 예수님 손에 맡기십시오. 우리가 계산기를 내려놓고 사랑을 선택할 때, 우리 삶의 빈 자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풍성해질 것입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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