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24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미친 사랑
연중 제2주간을 마무리하는 토요일입니다. 오늘은 친절과 온유의 성인이자 저술가들의 수호성인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세상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두 사람의 미친 사랑을 보여줍니다. 바로 원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과, 식사할 겨를도 없이 일하다가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 예수님입니다.
어제 독서까지 우리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얼마나 집요하게 쫓아다녔는지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제1독서에서 사울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드디어 내 세상이 왔다!”, “하느님이 내 원수를 갚아주셨다!” 하며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상식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옷을 찢고 단식하며 대성통곡을 합니다. 그는 사울을 자신을 죽이려던 원수로 기억하지 않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이자 이스라엘의 용사로 기억하며 슬픈 노래를 지어 바칩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2사무 1,19.23).
다윗은 사울의 악은 잊어버리고, 그가 가졌던 존엄성만을 기억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을 넘어선 거룩한 슬픔입니다. 다윗이 위대한 성군(聖君)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원수조차 품어 안고 울어줄 수 있는 바다 같은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원수의 죽음 앞에 통곡하는 다윗의 넓은 품입니다.
오늘 복음은 매우 짧지만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식사할 겨를도 없이 사람들을 돌보시자,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섭니다.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마르 3,21). 가족들이 보기에 예수님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적당히 쉬면서 해야지, 밥도 안 먹고 저렇게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광기로 보였던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미친 것이 맞습니다. 사랑에 미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에 미쳐버린 예수님의 열정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다 태워버리는 그 열정은, 미지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광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성인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사랑의 척도는 척도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원수를 위해 울어준 것도, 예수님께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일하신 것도, 모두 척도를 넘어선 사랑이었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바보 같다’, ‘미쳤다’고 손가락질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런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십니다.
우리는 너무 멀쩡하게 신앙생활을 하려고만 하는 것은 아닐까요? 손해 보지 않을 만큼만 사랑하고, 피곤하지 않을 만큼만 봉사하고, 자존심 상하지 않을 만큼만 용서하며 적당히 계산하고 있지는 않나요? 오늘 하루, 예수님의 거룩한 ‘미침’(광기)을 조금이라도 닮아봅시다.
미운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는 바보 같은 모습, 가족과 이웃을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열정적인 모습. 사람들이 “저 사람 예수 믿더니 좀 이상해졌어”라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다는 최고의 칭찬일 것입니다. “저 사람은 미쳤어”라는 말이 우리에게는 “저 사람이 참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훈장이 되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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