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말씀 vs 소리
새해의 두 번째 날입니다. 어제 우리는 희망차게 새해를 시작했지만, 하루 만에 다시 일상의 무게가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새해 계획에 대한 부담감이나, 올해는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하는 막막함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과 독서는 그런 우리에게 인생의 힘을 빼는 법, 곧 참된 겸손과 정체성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복음에는 유다교 지도자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어 심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의 질문은 단도직입적입니다. “당신은 누구요?”(요한 1,19). 이 질문은 세상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너는 어느 학교 출신이냐?”, “너의 직업은 뭐냐?”, “너는 얼마를 가졌느냐?”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의 자격을 증명하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의 대답이 인상적입니다. 그는 자신이 대단한 예언자라고 뽐내지도 않았고, 엘리야라고 과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명확하게 선을 긋습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 1,20). 이 짧은 고백은 신앙인들에게 엄청난 해방감을 줍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메시아 콤플렉스’에 시달립니다. 가정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고, 직장에서 내가 없으면 안 되고, 자녀의 인생도 내가 책임져야 한다고 착각합니다. 내가 구원자가 되려 하니 어깨가 무겁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가 나고 불안합니다. 하지만 요한은 말합니다. “나는 구원자가 아니며, 주인공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그의 정체성은 무엇입니까? “나는 …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요한 1,23).
‘소리’와 ‘말씀’의 차이를 아시나요? 예수님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말씀’(Word)이십니다. 반면 요한은 그 말씀을 전달하고 사라지는 ‘소리’(voice)입니다. 소리는 뜻을 전달하고 나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집니다. 소리가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으려 하면 그것은 ‘소음’(noise)이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위대함은 자신의 주제를 명확히 알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가리키는 손가락 역할을 충실히 했고, 주인공이 오시자 기꺼이 뒤로 물러났습니다. “(그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 역시 우리에게 그분 안에 머무를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니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1요한 2,28).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살 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대단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주님 안에 머무름으로써 가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거짓말쟁이는 자신이 하느님인 척하는 자들이지만, 참된 신앙인은 자신이 피조물임을 인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또한 위대한 두 교부, 성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두 성인은 평생의 절친한 친구였지만, 서로 경쟁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을 탐구하고 진리를 수호하는 데에만 경쟁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자신의 지성과 능력을 소리(voice)처럼 사용하고 사라졌습니다.
2026년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 어깨에 들어간 힘을 좀 뺍시다. 우리는 우리 가정의 구세주가 아니며, 또한 우리 자녀들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는 소리(voice)일 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내가 해결사가 되려고 아등바등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해결사이신 예수님께 길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마음속으로 조용히 고백해 봅시다. “주님, 저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당신만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이 겸손한 고백이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여러분을 자유롭게 하고, 참된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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