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17일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기념일
당신의 눈을 뜨게 하는 간절함
오늘 복음은 예리코 성문 어귀, 길바닥에 앉아있던 어느 눈먼 걸인의 이야기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의 세상은 어둠과 구걸이라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소리’ 하나가 들려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소리입니다. 그 순간, 눈먼 이의 가슴 속에서 무엇인가가 폭발합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끌어모아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8). 그러자 앞서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습니다(루카 18,39 참조). 이것이 바로 다음과 같이 들리는 세상의 소리입니다. ‘조용히 해!’, ‘네까짓 게 감히 누굴 부르는거야?’, ‘네 주제를 몰라?’, ‘우리를 방해하지 마!’
이것은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기에서 들려오는 소리와도 같습니다. 세속의 권력자인 안티오코스 임금이 하느님의 백성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그들의 신앙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라고 윽박지릅니다(1마카 1,41-43 참조). 성전은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1마카 1,54)으로 더럽혀지고, 하느님의 법을 따르는 이들은 죽임을 당합니다(1마카 1,62-63 참조). 세상의 군중은 언제나 참된 믿음의 소리를 잠재우려 합니다.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헝가리의 공주요, 튀링겐의 백작 부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얼마든지 호화로운 성에서 백성들의 어려움에 눈 감은 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궁전의 높은 담장 너머에서 들려오는 가난한 이들의 신음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녀가 가난한 이들과 나병 환자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려 할 때, 궁전에 사는 이들은 그녀를 비난했습니다. “품위를 지키세요!”, “왕족이 어찌 천한 것들과 어울리십니까?”, “우리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세요!”
이때, 복음에 등장하는 눈먼 이와 성녀 엘리사벳 그리고 마카베오 시대의 순교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좌절하고 침묵했나요? 오늘 복음의 눈먼 이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루카 18,39 참조). 성녀 엘리사벳은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어, 나병 환자의 발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마카베오기의 신앙인들은 죽음 앞에서도 거룩한 계약을 모독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외쳤습니다(1마카 1,63 참조).
이것이 바로 참된 믿음의 본질입니다. 세상이 나를 억누르고, 내 안의 양심이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을 때, 오히려 더욱 더 큰 소리로 주님을 외쳐 부르는 것, 이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나요? 그분은 ‘잠자코 있으라’는 군중의 소리가 아니라,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루카 18,38)라는 한 사람의 절박한 외침에 걸음을 멈추십니다(루카 18,40 참조). 그리고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루카 18,41)
이 질문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주님의 자비로운 확인입니다. 눈먼 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합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 그는 돈도, 빵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보는 것’을 구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육신의 눈을 뜨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어둠의 세상 속에서 진리와 희망을 보고, 하느님을 보게 해달라는 가장 거룩한 갈망입니다.
오늘 우리는 눈먼 이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우리 역시 수많은 죄와 근심, 세상의 가치관에 눈이 멀어,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성녀 엘리사벳은 세상 사람들이 혐오스러운 것으로만 보았던 나병 환자에게서 고통받는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복음의 눈먼 이는 군중이 ‘나자렛 출신’이라고만 부르던 예수님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다윗의 자손’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나의 이웃에게서 경쟁자만을 보고 있나요, 아니면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고 있나요? 나의 삶에서 절망만을 보고 있나요, 아니면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보고 있나요?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소리에 짓눌린 눈먼 이의 절박함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처럼 우리의 체면과 교만을 버리고, 더욱 큰 소리로 이렇게 부르짖읍시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루카 18,41).
저의 이기심에 눈이 멀어, 당신의 자비를 보지 못했습니다. 저의 교만에 눈이 멀어, 상처받은 이웃의 신음을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시어, 성녀 엘리사벳처럼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안에서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뜬 눈먼 이처럼, 저의 남은 모든 길에서 “하느님을 찬양하며 당신을 따르게”(루카 18,43 참조)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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