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15일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기도를 멈추지 마세요, 그분은 반드시 오십니다
혹시 소리쳐도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것 같은 절망감을 느껴본 적이 있나요?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삶이 너무나 고통스러운데 그 누구도, 심지어 하느님마저도 내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 같은 막막한 순간 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바로 그런 절망의 한가운데 서 있는 한 과부를 만납니다. 그녀는 힘도, 권력도 없고, 자신을 지켜줄 그 어떤 배경도 없는, 당시 사회의 가장 나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녀에게는 억울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도 않는”(루카 18,2) 무자비하고 불의한 재판관을 찾아갑니다. 그녀가 가진 무기는 단 하나, ‘끈질김’이었습니다. 그녀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매일같이 재판관을 찾아가 “저와 저의 적대자 사이에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루카 18,3) 하고 외칩니다. 재판관은 귀찮아 죽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마침내 그는 두 손을 듭니다. “저 과부가 나를 이토록 귀찮게 하니 그에게는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어야겠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까지 찾아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루카 18,5).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루카 18,1)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잘못 이해하면 안 됩니다. 이 비유는 하느님께서 불의한 재판관처럼, 우리가 귀찮게 졸라야 마지못해 응답하시는 분이라고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예수님의 논리는 이것입니다. “보아라, 저렇게 악한 재판관도 끈질긴 요청에는 응답하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를 사랑하시는 너희의 아버지, 선하신 하느님께서야 얼마나 더 기꺼이, 얼마나 더 확실하게 응답해 주시겠느냐?”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느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요? 오늘 제1독서 지혜서가 우리가 믿고 기도하는 하느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노예로 신음하던 절망의 밤을 묘사합니다. "부드러운 정적이 만물을 뒤덮고 시간은 흘러 한밤중이 되었을 때"(지혜 18,14),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바로 그 순간, "당신의 전능한 말씀이 하늘의 왕좌에서 사나운 전사처럼 멸망의 땅 한가운데로 뛰어내렸습니다"(지혜 18,15). 그 말씀은 억압자에게는 심판을, 억눌린 이들에게는 구원을 가져오는 결정적인 개입이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 온 창조 질서를 바꾸십니다(지혜 19,6 참조). "홍해는 장애물이 없는 길로, 거친 파도는 풀 많은 벌판으로 바뀌었습니다"(지혜 19,7).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을 지키시기 위해 자연의 법칙까지도 새롭게 빚으시어, 그들을 기적처럼 건너게 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가 기도하는 하느님이십니다. 우리는 불의한 재판관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홍해를 가르시고, 죽음의 한복판에 생명의 말씀을 내리시는 전능하신 구원자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과부처럼 끈질기게 기도해야 할까요? 그것은 하느님을 귀찮게 해드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이 마치 불의한 재판관에게 점령당한 것처럼 보일 때, 절망 속에서 우리의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 없는 외침이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둠 속에서 “주님, 당신은 홍해를 가르신 분임을 저는 믿습니다. 지금 제 앞을 가로막은 절망의 바다도 갈라 주십시오!” 하고 외치는 믿음의 선포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부드러운 정적 속에서, 마침내 우리를 구원하실 그분의 전능하신 말씀이 내리꽂힐 것을 기다리는 ‘깨어있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확신에 차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루카 18,7-8). 문제는 하느님의 응답이 아닙니다. 그분은 반드시, 곧 응답하십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마치시며, 우리 가슴에 박히는 하나의 질문을 남기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카 18,8) 하느님은 반드시 오시는데, 그때까지 그분을 기다리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과연 남아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짓누르는 ‘불의한 재판관’은 무엇입니까? 질병입니까, 경제적인 어려움입니까, 깨어진 관계입니까 아니면 응답 없는 기도에 대한 지친 마음입니까? 포기하지 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당신은 지금 불의한 재판관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구원자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예, 주님! 제가 바로 여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마지막 믿음의 한 사람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이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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