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13일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당신 안에 이미 와 있는 지혜의 나라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아주 중요한,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한 번쯤 품어봤을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옵니까?”(루카 17,20). 이 질문은 우리 시대의 질문이기도 합니다. 혼란스러운 세상의 뉴스를 보며, 개인적인 삶의 고통을 겪으며, “하느님, 당신의 나라는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언제쯤 이 모든 것이 바로잡힙니까?” 하고 우리는 부르짖곤 합니다. 우리는 저 하늘이 갈라지며 일어날 장엄한 표징, 모든 악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극적인 순간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우리의 모든 기대를 완전히 뒤엎으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 가운데에 있다니 참으로 놀랍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저 밖에서 올 왕국을 찾고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여기’에, 그들 ‘가운데’에 현존하고 계심을, 곧 예수님 자신이 하느님의 나라의 현존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다는 ‘하느님의 나라’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가 그 모습을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냅니다. 

지혜서는 하느님의 지혜를 살아있는 인격처럼 묘사합니다.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지혜 7,22-23).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지혜 7,25-26). 그리고 거룩한 지혜는 가만히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하며(지혜 7,24),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지혜 8,1).

우리가 찾던 ‘하느님의 나라’는 바로, 온 세상을 꿰뚫고 만물을 훌륭히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지혜’가 활동하시는 영역입니다. 그리고 지혜의 영, 곧 성령께서는 세례를 통해 우리 ‘가운데’,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기 위해 거창한 기적이나 표징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하느님의 지혜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려 애쓴다면,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나라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미움 대신, 선을 사랑하는 지혜를 선택하여 용서를 베풀 때,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이기심 대신, 선행을 베푸는 지혜를 따라 이웃을 도울 때, 바로 그 자리에 하느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의 혼란함 속에서 불안에 떠는 대신, 만물을 훌륭히 다스리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믿고 평화를 찾을 때, 내 마음은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된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루카 17,24)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마지막 날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광의 날이 오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루카 17,25)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고통과 배척을 피해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고통과 배척의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옵니다.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따라 살기로 결심할 때, 우리 역시 세상으로부터 배척받고 십자가를 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걷는 십자가의 길이야말로, 하느님의 나라가 우리를 통해 이 땅에 가장 힘차게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언제 옵니까?” 하고 더 이상 하늘만 쳐다보며 묻지 맙시다. 대신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계신 지혜의 성령께 순종합시다. 영원한 빛의 반사인 지혜가 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게 보게 하시고, 하느님 활동의 깨끗한 거울인 지혜가 나의 손과 발을 움직여 이웃에게 사랑을 실천합시다. 그렇게 우리가 ‘살아있는 하느님의 나라’가 되어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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