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일

 


당신의 기도는 누구를 향하고 있습니까?

오늘 우리는 성전에 올라간 두 사람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 다른 한 사람은 세리입니다. 두 사람 모두 ‘기도’를 하러 갔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한 사람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되찾아 의롭게 되어 돌아간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지금 어떻게 기도하고 있는가?", "나의 기도는 과연 하느님께 가닿고 있는가?”

먼저 바리사이를 보십시오. 그는 남들에게 보란 듯이 서서, 자신의 ‘영적 이력서’를 하느님께 낭독합니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루카 18,11-12).

얼핏 들으면 대단한 신앙인 같습니다.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고, 심지어 그 이상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그의 기도에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하느님께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을 숭배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느님을 향한 대화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의로움을 확인하는 독백에 불과합니다. 그는 하느님의 자비가 아니라, 자신의 공로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리는 어떻습니까? 그는 차마 성전 앞자리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루카 18,13)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단 한 문장입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이보다 더 간결하고, 절박하며, 진실한 기도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감히 자신을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의 비참한 실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 하느님의 자비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집회서의 말씀은 이 두 사람의 기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정확하게 예고합니다.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집회 35,15ㄴ.21). 바리사이의 교만한 독백은 자기 자신에게 갇혀 하늘로 올라가지 못했지만, 세리의 겸손한 탄식은 구름을 꿰뚫고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8,14).

이 복음은 오늘 성전에 모인 우리, 바로 ‘착실한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는 우리를 향한 가장 무서운 경고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미사에 빠지지 않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고, 교무금도 바치면서, 어느덧 우리 마음속에 ‘바리사이의 누룩’이 자라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적어도 저렇게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나는 저렇게 죄짓고 사는 사람과는 달라’,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하느님께서 이 정도는 복을 주셔야 하지 않나?’.

우리의 기도와 신앙생활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나의 의로움을 쌓는 공로가 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는 순간, 우리는 정확히 저 바리사이의 자리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의롭게 되는 삶’의 모습은 무엇일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위대한 모범을 보여줍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자신의 마지막을 앞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2티모 4,7). 이 고백이 바리사이의 자기 자랑과 무엇이 다를까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뤘다고 자랑했지만, 바오로는 이 모든 것이 ‘주님의 힘으로’ 가능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2티모 4,16-17).

바오로의 자랑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자신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함께해 주신 ‘주님의 성실하심’입니다. 그가 받는 ‘의로움의 화관’(2티모 4,8)은 그가 쟁취한 전리품이 아니라, 주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의 선물입니다. 이것이 바로 세리의 겸손함으로 시작하여, 평생을 주님께 의탁하며 살아간 사도의 마지막 고백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앞에서 부족하고 나약한 죄인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나는 이만큼 했습니다’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주님, 당신의 자비가 없으면 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를 매 순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우리의 기도를 돌아봅시다. 나의 기도는 나의 의로움을 확인하는 독백입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하는 대화입니까?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마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세리처럼 가슴을 치는 겸손한 마음을 청합시다. 우리가 스스로를 낮출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들어 높이시어 당신의 자비로 가득 채워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여 집으로 돌려보내 주실 것입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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