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16일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자물쇠가 된 열쇠, 은총이 된 믿음
열쇠는 무엇을 위해 존재합니까? 당연히 문을 열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문을 열어야 할 열쇠를 손에 쥐고서, 그 열쇠로 문을 더 굳게 잠가 버리고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다면, 그보다 더 답답하고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기가 막힌 모습을 지적하십니다. 당대 최고의 성경 전문가요, 율법 학자라 불리던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루카 11,52).
그들이 손에 쥐고 있던 ‘지식의 열쇠’는 바로 하느님의 말씀, 율법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그 말씀을 통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길을 사람들에게 열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열쇠를 어떻게 사용했습니까? 그들은 율법을 수백 가지의 까다로운 조항으로 만들어 사람들을 옭아매는 족쇄로 사용했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길을 쉽고 명확하게 열어주기는커녕, “이것도 해야 한다, 저것도 지켜야 한다”며 온갖 무거운 짐을 지워놓고는, 정작 그 길의 본질인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의 지식은 문을 여는 열쇠가 아니라, 사람들을 절망하게 만드는 거대한 자물쇠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조들이 죽였던 예언자들의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면서, 겉으로는 예언자들을 공경하는 척 했습니다. 하지만 예언자들이 목숨 바쳐 외쳤던 ‘정의와 회개’의 메시지는 외면한 채, 바로 그 예언자들이 예고했던 메시아, 곧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배척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겉과 속이 다른 위선으로, 그들 스스로 하느님 나라의 문을 닫아버린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 교사들이 꽁꽁 감추고 녹슬게 만들어 버린 그 ‘열쇠’, 하느님 나라의 문을 활짝 여는 진짜 열쇠는 대체 무엇일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목청껏 우리에게 그 열쇠를 보여줍니다.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로마 3,21-22).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선행을 쌓았는가, 얼마나 완벽하게 율법 조항을 지켰는가 하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선언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가 감히 하느님 앞에 서서, “저는 율법을 단 하나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저는 완벽하게 의롭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단언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로마 3,23).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는 결코 하느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아슬아슬하게 성벽을 기어오르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구원은, 성벽 꼭대기에서 하느님께서 내려주시는 튼튼한 밧줄을 믿고 붙잡는 것입니다. 이 밧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이 밧줄을 붙잡는 행위가 바로 ‘믿음’입니다. 구원은 우리의 공로(merit)가 아니라, 전적인 하느님의 선물(gift)이며 은총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로마 3,24)라고 말합니다.
이 진리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워집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이 더 이상 하느님께 점수 따기 위한 고행이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혹시 우리도 모르게 우리만의 율법을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도는 이만큼 해야 해’, ‘성당 봉사는 이 정도는 해야지’, ‘봉헌금은 이만큼 내야 구원받을 수 있을 거야’ 등등. 이러한 생각들이 우리를 짓누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면, 우리 역시 ‘지식의 열쇠’를 ‘판단의 자물쇠’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 손에 들린 녹슨 자물쇠들을 내려 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 ‘믿음’이라는 반짝이는 열쇠를 쥐여주십니다. 이 열쇠는 유다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많이 배운 사람에게나,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나, 성인에게나, 죄인에게나 차별 없이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 믿음의 열쇠로 우리 마음의 문을 엽시다. ‘나는 부족하다’는 죄책감의 문을 열고, 그분의 자비하심을 받아들입시다. ‘저 사람은 틀렸다’는 판단의 문을 열고, 모든 이를 차별 없이 부르시는 그분의 사랑을 배웁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이 먼저 하느님 나라의 기쁨으로 들어가고, 절망 속에 갇힌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의 마음을 함께 열어주는, 참된 복음의 전달자가 됩시다. 우리의 자랑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오직 한 분뿐이십니다. 이 기쁜 소식을 마음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는 하루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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