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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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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로의 아들 오늘은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성 바르나바 사도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는 비록 열두 사도에 속하지는 않았으나, 초대 교회에서 그들에 못지않은 권위와 열정으로 복음을 선포한 위대한 인물입니다. 오늘 전례의 말씀은 성 바르나바의 삶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대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깊이 일깨워 줍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은 바르나바를 아주 아름답게 묘사합니다.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사도 11,24). 그의 착함은 단순히 성격이 좋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본명인 요셉 대신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로 불렸을 만큼, 그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일으켜 세우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과거 박해자였던 바오로를 모두가 불신하며 피할 때, 그의 보증인이 되어 사도들에게 인도한 이가 바로 바르나바였습니다. 그는 사람의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하느님께서 빚어가실 그 사람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처럼 누군가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어주는 바르나바와 같은 사람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핵심적인 지침을 주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바르나바 사도는 이 말씀을 삶으로 온전히 살아낸 분입니다. 그는 회개한 후 자신의 밭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내놓음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헌신했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을 자신만의 소유로 가두지 않고 세상으로 기꺼이 흐르게 했습니다. 진정한 복음 선포는 화려한 말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누군가에게 주님의 평화를 빌어주는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바르나바가 안티오키아에 가서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목격하고 교우들을 격려했을 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 ...

[묵상] 2026년 4월 28일 부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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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오늘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단어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마주합니다. 안티오키아에서 처음 사용된 이 명칭은 단순히 종교적인 분류를 넘어, 그들의 삶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아 있었는지를 증명하는 영광스러운 칭호였습니다. 스테파노의 일로 시작된 박해로 인해 신자들은 정든 곳을 떠나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흩어져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유다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지만, 점차 그리스인들에게도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난은 신자들을 위축시키기보다 오히려 선교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가 되었는데, 이는 바로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에 닥친 예기치 못한 시련이 우리를 낯선 환경으로 몰아넣을 때, 그곳이 바로 주님의 손길 안에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선교의 현장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안티오키아에 바르나바를 파견했습니다. 성경은 그를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 (사도 11,24)이라고 묘사합니다. 그는 신자들을 보며 진심으로 기뻐했고,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성하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특히 그는 과거의 박해자였던 사울(바오로)을 찾아내어 공동체로 이끄는 포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처럼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세워주는 격려자가 있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메시아인지 분명히 밝히라며 다그쳤지만, 주님은 그들이 믿지 않는 이유가 그분의 양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요한 10,27). 목자와 양이 매일 시간을 같이 보내며 서로의 음성에 익숙해지듯, 우리도 기도와 말씀을 통해 주님의 주파수에 맞추어야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 속에서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가려내는 분별력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능력입니다. 우리는 오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