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악의 고리를 끊는 사랑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정의와 보복이라는 인간의 본능적인 감정을 정면으로 다루며, 우리 신앙이 지향해야 할 더 높은 차원의 길을 제시합니다. 제1독서가 탐욕이 부른 비극적인 불의를 고발한다면, 복음은 그 불의의 사슬을 끊어내는 예수님의 혁명적인 가르침을 들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나봇의 포도밭’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아합 임금은 이웃 나봇의 포도밭을 탐냈으나, 나봇은 조상의 상속지를 팔 수 없다는 신앙적 원칙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러자 왕비 이제벨은 거짓 증언과 조작된 재판이라는 비열한 수단으로 무고한 나봇을 살해하고 밭을 빼앗고 맙니다. 이 사건은 권력이 신앙과 양심을 짓밟을 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인간의 탐욕이 나의 것을 채우기 위해 남의 생명마저 얼마나 쉽게 도구화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우리 안에도 나봇의 포도밭을 탐내는 아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는 않은지 깊이 돌아봐야 합니다.
나봇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이라면 누구나 아합과 이제벨을 향한 강렬한 분노와 복수심을 느낄 것입니다. 구약의 ‘동태복수법’(눈에는 눈, 이에는 이)은 사실 무분별한 복수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만큼만 되돌려주라는 폭력의 제한적 조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혁명적인 선포를 하십니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마태 5,39). 뺨을 치면 다른 쪽도 돌려대고, 겉옷을 가지려 하면 속옷까지 내주라는 말씀은 무기력한 굴복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폭력의 논리를 거부하는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내가 똑같이 되갚아 주는 순간 나는 악인과 같은 수준으로 전락하고 폭력의 사슬은 영원히 이어지지만, 그 고통을 내 몸으로 받아내며 멈출 때 비로소 악의 연쇄는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의 가르침을 십자가 위에서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고 뺨을 맞으면서도 군대를 불러 보복하지 않으시고 모든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주님이 세상의 눈에 바보처럼 당하셨기에 비로소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세상은 "당하고만 살지 마라", "받은 만큼 갚아줘라"라고 속삭이지만, 주님은 "사랑으로 이겨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봇의 억울한 죽음은 아합의 멸망을 불렀지만, 예수님의 억울한 죽음은 온 인류의 부활이라는 위대한 승리로 이어졌습니다. 내가 오늘 조금 손해 보고, 먼저 참고, 비난을 감수하는 그 자리가 바로 하느님의 정의가 바로 서는 자리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내 이익을 위해 타인의 마음이나 권리를 나봇의 포도밭처럼 함부로 빼앗고 있지는 않습니까? 또한 나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눈에는 눈'의 논리로 대응합니까, 아니면 기도를 통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 노력합니까? 폭력을 멈추는 진정한 힘은 더 큰 폭력이 아니라 더 큰 사랑에서 나옵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 나를 불쾌하게 하거나 부당하게 대할 때 잠시 숨을 고르며 마음속으로 "주님, 저 사람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해 봅시다. 그것이 바로 등경 위에 빛을 밝히는 삶이며, 탐욕의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살아가는 길입니다.
“주님, 저희가 나봇처럼 올곧은 양심을 지키게 하시고, 아합처럼 탐욕에 눈멀지 않게 하소서. 또한 상처 입었을 때 보복의 유혹을 이겨내고, 당신이 보여주신 십자가의 사랑으로 악의 고리를 끊어내는 평화의 일꾼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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