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025의 게시물 표시

[묵상] 2025년 12월 1일 대림 제1주간 월요일

이미지
한 말씀만 하소서 대림 시기의 첫 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주말을 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오늘, 전례는 우리가 매일 미사 때마다 영성체 직전에 바치는 기도의 기원이 된 인물을 소개합니다. 바로 로마의 백인대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백인대장은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자신의 종을 위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가서 그를 고쳐 주마" (마태 8,7) 하고 선뜻 나서시자, 백인대장은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 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 (마태 8,8). 이 고백이 왜 그토록 위대한 믿음일까요? 그리고 대림 시기를 시작하는 우리에게 이 고백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이 고백은 철저한 '겸손'에서 나왔습니다. 백인대장은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의 장교였습니다. 권력으로 따지면 예수님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 앞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 곧 하느님의 권능 앞에서는 한낱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히 인정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지위나 힘을 내세워 예수님을 오라 가라 하지 않았습니다. 참된 믿음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느님의 크심을 고백하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둘째, 이 고백은 말씀의 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였습니다. 그는 굳이 예수님께서 직접 와서 손을 얹거나 의식을 행하지 않아도, 그분의 말씀 한마디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치유가 일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 (마태 8,8). 이 짧은 문장 안에, 예수님을 단순한 치유자가 아니라 만물을 다스리는 주권자로 인정하는 놀라운 신앙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에" (이사 4,2), 곧 주님의 날이 오면 주님께서 당신 백성의 허물을 씻어내시고, 그들 위에 당신의 영광을 지...

[묵상] 2025년 11월 29일 연중 제34주간 토요일

이미지
  마음이 물러지지 않게, 깨어 기도하십시오 오늘은 전례력으로 한 해의 마지막 날입니다. 우리는 지난 1년 동안 대림시기로 시작하여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부활 그리고 성령 강림을 거쳐 오늘 이 시점까지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이제 내일이면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대림시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오늘, 교회는 우리에게 마지막 당부를 전합니다. 그것은 “끝까지 깨어 있으라” 는 주님의 간곡한 부탁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걱정하시며 경고하십니다. "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루카 21,34).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마음이 물러진다’는 표현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고 둔하게 만드는 것이 반드시 큰 죄악이나 방탕함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생활의 걱정  또한 우리의 영혼을 잠들게 하는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먹고사는 문제, 자녀 걱정, 노후 대책, 인간 관계의 스트레스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물론 이것들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활의 걱정에만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리면, 우리의 영혼은 점점 무거워져서 하늘을 날지 못하고 땅바닥에 붙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그날이 닥쳤을 때, 우리는 마치 덫에 걸린 짐승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니엘은 환시를 통해, 세상의 권력을 상징하는 무시무시한 짐승들을 봅니다. 그 짐승들은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집어삼킬 듯이 위협합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의 거대한 흐름, 경제 위기, 전쟁, 불의한 권력들이 바로 이 짐승들처럼 우리를 공포에 떨게 합니다. 다니엘조차 " 나 다니엘은 정신이 산란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환시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다니 7,15)라고 고백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에 떨거나 걱정에 짓눌려 있지 말고, 다른 선택을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것은...

[묵상] 2025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이미지
세상의 겨울이 지나면, 말씀의 여름이 옵니다 어느덧 우리는 전례력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창밖의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변하고 사라진다”는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이치를 들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루카 21,29-30). 잎이 돋아난다는 것은 생명의 신호입니다. 그것은 곧 따뜻한 여름, 결실의 계절이 온다는 희망의 징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때로는 두렵고 혼란스러운 징조들조차도, 믿는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희망의 신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희망을 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제1독서의 다니엘 예언자가 본 환시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밤의 환시 속에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을 봅니다. 사자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한 이 짐승들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제국들,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한 힘과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크고 무서워서, 마치 이 세상이 그들의 영원한 지배 아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삶을 짓누르는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전쟁, 불확실한 미래가 바로 이 짐승들처럼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환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시무시한 짐승들의 시대는 결국 지나가고, “연로하신 분” , 곧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아들 같은 이” 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영원한 통치권을 받습니다(다니 7,13-14 참조). 짐승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사람의 아들의 시간은 영원합니다. 세상의 권력은 공포로 다...

[묵상] 2025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이미지
세상이 무너질 때, 고개를 드는 용기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마치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두려운 장면들을 묘사합니다. 독서에서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의 굴속에 던져지고, 복음에서는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되어 파괴되며, 하늘에서는 무시무시한 표징이 나타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쓰러집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다니엘처럼 억울한 모함에 빠져 사자 굴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혹은 예수님의 예언처럼, 내가 의지했던 삶의 터전(예루살렘)이 무너지고, 감당할 수 없는 파도 소리처럼 불안이 엄습하여 숨조차 쉬기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상황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절망하고, 고개를 떨굽니다. “이제 다 끝났구나.” 이것이 세상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우리에게, 세상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명령하십니다. "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루카 21,28). 다들 무서워서 숨고 도망치고 고개를 숙이는 그 순간에, 오히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니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 비결이 오늘 제1독서 다니엘의 모습 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사자들에게 먹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자를 본 것이 아니라, 사자의 입을 막으시는 하느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리우스 임금이 다음 날 아침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을 때, 다니엘은 굴속에서 평온하게 대답합니다. "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 (다니 6,23). 다니엘에게 사자 굴은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호와 권능이 드러나는 기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는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도 믿음으로 머리를 들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머리를 들어라” 고 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무너지...

[묵상] 2025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이미지
  저울 위에 놓인 우리의 삶 오늘 독서에서, 바빌론 임금 벨사차르가 자신의 대신 천 명을 불러놓고 호화로운 잔치를 벌입니다. 그는 흥에 겨워, 자신의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과 은으로 된 거룩한 기물들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술을 마시며 우상들을 찬양합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거룩한 그릇들이 인간의 쾌락과 교만을 위해 모독당하는 순간,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왕궁의 석고 벽에 글자를 씁니다. 잔치판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합니다. 다니엘이 해석한 글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 (다니 5,25).  그중에서도 '트켈'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가슴을 칩니다. "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 (다니 5,27). 벨사차르 임금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권력, 부, 명예, 수많은 신하들. 그의 저울은 차고 넘쳐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저울 위에 올라갔을 때, 그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고, 거룩한 것을 모독했으며, 자신의 생명을 쥐고 계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은 화려했으나, 영적으로는 깃털보다 가벼운 ‘무게 미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날 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쳐올 박해와 시련을 예고하십니다. 제자들은 벨사차르와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려가며, 부모와 형제에게조차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루카 21,12.16 참조). 세상의 저울로 보면, 제자들의 삶은 실패한 삶, 가벼운 삶, 아무것도 아닌 삶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 (루카 21,13), 그리고 " 너희는 인...

[묵상] 2025년 11월 25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이미지
  무너지는 것들 사이에서 영원을 붙잡는 지혜 우리는 지금 전례력의 마지막 주간인 연중 제34주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이 시기에 세상의 종말과 하느님 나라의 완성을 묵상하도록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이들이 성전의 아름다움을 찬양합니다. “이 성전이 정말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구나!” 그들의 눈에 예루살렘 성전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웅장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완벽하게 담아낸 그릇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감탄에 찬물을 끼얹는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루카 21,6). 우리가 절대적이고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이 예고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오늘 제1독서 다니엘서의 환시와 맞닿아 있습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꿈을 해석합니다. 꿈에 나타난 거대한 신상은 황금 머리, 은 가슴, 청동 배, 쇠 다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하고 강력하게 보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다 가진 듯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 신상의 치명적인 약점은 ‘발’에 있었습니다. 발이 쇠와 진흙이 섞여 있어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옵니다. “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와,  쇠와 진흙으로 된 그 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습니다" (다니 2,34). 화려했던 금, 은, 청동, 쇠는 타작마당의 겨처럼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리고 흔적도 없게 됩니다. 오늘 말씀들은 우리의 인생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평생 무엇을 쌓아 올리고 있습니까? 우리 각자는 ‘나’라는 신상을 멋지게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머리에는 ‘명예’라는 황금을 씌우고, 가슴에는 ‘재물’이라는 은을 채우며, 다리에는 ‘건강’과 ‘권력’이라는 쇠를 두릅니다. 우리는 그것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고 믿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