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세상이 무너질 때, 고개를 드는 용기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마치 한 편의 재난 영화를 보는 듯한 두려운 장면들을 묘사합니다. 독서에서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들의 굴속에 던져지고, 복음에서는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되어 파괴되며, 하늘에서는 무시무시한 표징이 나타나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쓰러집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이런 순간이 찾아옵니다. 다니엘처럼 억울한 모함에 빠져 사자 굴 같은 절망적인 상황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혹은 예수님의 예언처럼, 내가 의지했던 삶의 터전(예루살렘)이 무너지고, 감당할 수 없는 파도 소리처럼 불안이 엄습하여 숨조차 쉬기 힘든 순간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상황 앞에서 두려움에 떨며, 절망하고, 고개를 떨굽니다. “이제 다 끝났구나.” 이것이 세상의 반응입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는 우리에게, 세상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명령하십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루카 21,28). 다들 무서워서 숨고 도망치고 고개를 숙이는 그 순간에, 오히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니요?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 비결이 오늘 제1독서 다니엘의 모습 속에 숨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사자들에게 먹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자를 본 것이 아니라, 사자의 입을 막으시는 하느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리우스 임금이 다음 날 아침 떨리는 목소리로 불렀을 때, 다니엘은 굴속에서 평온하게 대답합니다. "저의 하느님께서 천사를 보내시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으므로, 사자들이 저를 해치지 못하였습니다"(다니 6,23).

다니엘에게 사자 굴은 죽음의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의 보호와 권능이 드러나는 기적의 장소였습니다. 그는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도 믿음으로 머리를 들고 있었기에,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머리를 들어라”고 하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는 그 사건들(시련, 고통, 상실)은 끝이 아닙니다. 그것은 낡은 것이 지나가고, 하느님의 새로운 구원(속량)이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마치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 껍질이 깨져야 새싹이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땅만 쳐다보고 있으면, 무너지는 잔해와 굶주린 사자들만 보일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공포에 질려 까무러칠 수밖에 없습니다(루카 21,26 참조). 하지만 우리가 믿음으로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면, 혼란 너머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는, 곧 권능과 영광으로 오시는 "사람의 아들"(루카 21,27)을 보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를 심판하러 오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속량(구원)하러 오시는 분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둘러싼 상황이 사자 굴 같나요?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같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자 굴에서도 다니엘을 지키신 하느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 속에서도 당신의 백성을 기억하시는 주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지금은 고개를 숙이고 한숨 쉴 때가 아닙니다. 지금이야말로 믿음의 허리를 꼿꼿이 펴고, 희망의 머리를 들어 다가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때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 세상이 알지 못하는 구원이 바로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나를 두렵게 하는 사자들 앞에서 당당히 외치십시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시니, 나는 머리를 들어 그분을 보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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