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26일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저울 위에 놓인 우리의 삶
오늘 독서에서, 바빌론 임금 벨사차르가 자신의 대신 천 명을 불러놓고 호화로운 잔치를 벌입니다. 그는 흥에 겨워, 자신의 아버지 네부카드네자르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해 온 금과 은으로 된 거룩한 기물들을 가져오게 하여, 그것으로 술을 마시며 우상들을 찬양합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거룩한 그릇들이 인간의 쾌락과 교만을 위해 모독당하는 순간, 갑자기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나타나 왕궁의 석고 벽에 글자를 씁니다. 잔치판은 순식간에 공포의 도가니로 변합니다.
다니엘이 해석한 글자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므네 므네 트켈’, 그리고 ‘파르신’입니다"(다니 5,25). 그중에서도 '트켈'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가슴을 칩니다. "‘트켈’은 임금님을 저울에 달아 보니 무게가 모자랐다는 뜻입니다"(다니 5,27). 벨사차르 임금은 세상의 눈으로 볼 때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권력, 부, 명예, 수많은 신하들. 그의 저울은 차고 넘쳐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저울 위에 올라갔을 때, 그의 영혼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몰랐고, 거룩한 것을 모독했으며, 자신의 생명을 쥐고 계신 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의 삶은 화려했으나, 영적으로는 깃털보다 가벼운 ‘무게 미달’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그날 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닥쳐올 박해와 시련을 예고하십니다. 제자들은 벨사차르와 정반대의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히고, 임금들과 총독들 앞으로 끌려가며, 부모와 형제에게조차 미움을 받을 것입니다(루카 21,12.16 참조). 세상의 저울로 보면, 제자들의 삶은 실패한 삶, 가벼운 삶, 아무것도 아닌 삶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약속을 하십니다. "이러한 일이 너희에게는 증언할 기회가 될 것이다"(루카 21,13), 그리고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상의 권력자들처럼 화려한 잔치를 벌이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박해와 시련 속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내와,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맞서는 증언을 요구하십니다. 바로 믿음의 인내가 하느님의 저울 위에서는 가장 묵직하고 값진 보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들은 우리 각자를 하느님의 저울 위로 초대합니다.
우리는 때때로 벨사차르처럼 행동하곤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기물들, 곧 우리의 몸, 시간, 자연, 재능을 하느님의 영광이 아니라, 나의 쾌락과 욕심, 교만을 위해 함부로 사용합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꾸미고 성공한 척하지만, 내면은 감사할 줄 모르는 오만함으로 채우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 밤 주님께서 우리 영혼을 저울에 다신다면, 과연 무게가 얼마나 나갈까요? 혹시 주님께서 원하시는 무게에 모자란다는 판정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요?
반대로, 여러분이 지금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이 있습니까? 억울한 일을 당해 마음이 무거우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미리 걱정하지 마라. 내가 너에게 지혜를 주겠다. 너는 머리카락 하나도 잃지 않을 것이다”(루카 21,14-15.18 참조). 우리가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고 인내할 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을 지킬 때, 우리의 영혼은 하느님 보시기에 꽉 찬 알곡처럼 묵직해집니다. 세상의 저울은 권력에 기울지만, 하느님의 저울은 ‘십자가를 지는 인내’로 기울어집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을 무엇으로 채울지 선택합시다. 잠깐 있다 사라질 세상의 허영심으로 나를 부풀리겠습니까, 아니면 비록 힘들더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인내로 내 영혼을 단단하게 채우겠습니까?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루카 21,19).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세상의 평가가 아닌 하느님의 저울 앞에서 ‘참된 무게’를 지닌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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