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28일 연중 제34주간 금요일
세상의 겨울이 지나면, 말씀의 여름이 옵니다
어느덧 우리는 전례력의 마지막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창밖의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우리에게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변하고 사라진다”는 진리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일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이치를 들어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십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루카 21,29-30).
잎이 돋아난다는 것은 생명의 신호입니다. 그것은 곧 따뜻한 여름, 결실의 계절이 온다는 희망의 징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 때로는 두렵고 혼란스러운 징조들조차도, 믿는 이들에게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의 '여름'이 가까이 왔음을 알리는 희망의 신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희망을 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곤 합니다. 왜 그럴까요? 오늘 제1독서의 다니엘 예언자가 본 환시가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합니다.
다니엘은 밤의 환시 속에서, 바다에서 올라오는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을 봅니다. 사자 같기도 하고, 곰 같기도 한 이 짐승들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강력한 제국들, 우리를 위협하는 거대한 힘과 권력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너무나 크고 무서워서, 마치 이 세상이 그들의 영원한 지배 아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삶을 짓누르는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전쟁, 불확실한 미래가 바로 이 짐승들처럼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다니엘의 환시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시무시한 짐승들의 시대는 결국 지나가고, “연로하신 분”, 곧 하느님의 심판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영원한 통치권을 받습니다(다니 7,13-14 참조). 짐승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사람의 아들의 시간은 영원합니다. 세상의 권력은 공포로 다스리지만, 하느님의 나라는 생명으로 다스립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묵시적인 환시의 결론을, 짧지만 강력한 문장으로 우리 가슴에 새겨주십니다.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루카 21,33).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동아줄입니다. 다니엘이 보았던 강력한 짐승들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저 하늘과 땅도,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나의 젊음과 재물도, 언젠가는 다 사라집니다. 이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말씀’, 곧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사랑의 약속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붙잡고 살아가십니까? 혹시 사라질 것들에 여러분의 인생을 걸고 있지는 않습니까? 잎이 지면 사라질 세상의 영광, 짐승처럼 으르렁대지만 결국은 멸망할 세상의 힘에 마음을 빼앗겨 불안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불안해하지 마라. 그것들은 지나가는 겨울바람일 뿐이다. 너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돋아나는 무화과나무 잎이다.”
세상의 변화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주님의 말씀을 우리가 굳게 붙잡을 때, 우리는 삶의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통의 순간에도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는 말씀을 붙잡으면, 고통은 여름을 알리는 싹이 됩니다. 상실의 순간에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라는 말씀을 붙잡으면,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됩니다.
모든 것이 변해가는 가을에, 우리 삶의 기반을 다시 점검해 봅시다. 무너질 세상의 땅 위에 집을 짓지 말고, 영원히 변치 않는 주님의 말씀이라는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지읍시다. 그리하여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날, 우리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여름을 가져다주시는 사람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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