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19일 재의 예식 다음 목요일
생명을 선택하는 길
어제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으며 '사순 시기'라는 은총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전례는 우리에게 이 여정의 목적과 방법을 명확하게 제시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 인생이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임을 보여줍니다. 모세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하라고 외치고, 예수님은 “나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지킬 것인가”를 묻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장하게 말합니다. “보아라, 내가 오늘 너희 앞에 생명과 행복, 죽음과 불행을 내놓는다. 나는 오늘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내놓았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5.19). 누가 감히 죽음과 불행을 선택하겠습니까? 모두가 행복을 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속는 이유는, 죽음이 달콤한 사탕처럼 행복의 가면을 쓰고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당장 화를 내면 속이 시원할 것 같고, 참으면 손해 보는 것 같습니다. 당장 내 욕심을 채우면 기쁠 것 같지만, 결국은 영혼이 병듭니다. 모세는 눈앞의 쾌락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곧 생명임을 강조합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생명을 선택하십시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생명을 선택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는 역설적인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루카 9,23). 여기서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거나 학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내 안의 거짓된 자아, 곧 ‘내 뜻대로 다 되어야 한다’는 고집과 이기심을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내 고집이 죽어야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서 살아납니다. 내가 죽어야 가정이 살고, 내가 양보해야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신비입니다. 생명으로 가는 길은 자기의 부인(denial)에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 중 놓치지 말아야 할 단어는 “날마다”입니다. 우리는 가끔 거창한 순교나 엄청난 희생을 상상하지만,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일상의 순교입니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기도하는 것, 꼴 보기 싫은 사람에게 먼저 웃으며 인사하는 것, 힘든 퇴근길에 가족을 위해 한 번 더 참는 것. 이 사소하고 지루해 보이는 일상의 인내가 바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한 번의 큰 이벤트보다, 매일 반복되는 작은 사랑의 실천이 우리를 거룩하게 만듭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움켜쥐면 썩지만, 나누면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은 내어줌으로써 완성됩니다. 사순 시기는 내가 꼭 쥐고 있던 것, 곧 나의 시간, 재물, 자존심을 조금씩 손에서 놓는 훈련의 시간입니다. 손을 펴야 그 빈 손을 예수님께서 잡아주실 수 있습니다.
어제 다짐했던 사순의 결심들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합시다. 십자가는 우리를 짓누르는 짐이 아니라, 천국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오늘 하루, 내 뜻대로 안 되는 상황이 닥칠 때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주님, 이 불편함이 제가 오늘 져야 할 십자가군요. 기꺼이 지겠습니다. 저에게 생명을 주십시오.” “너희와 너희 후손이 살려면 생명을 선택해야 한다”(신명 30,19). 아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