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17일 설
복의 근원
오늘은 민족 고유의 명절, 설입니다. 오랜만에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정을 나누고, 먼저 떠나신 조상님들을 기억하며, 새해의 희망을 다짐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떡국 한 그릇에 나이 한 살을 더 먹지만,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 한 그릇을 먹고 영적으로 더 성숙해지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오늘 설 명절 미사의 말씀들은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살아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오늘 제1독서인 민수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사제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 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민수 6,24-25).
설날 아침, 우리는 어르신들께 세배를 드리며 복(福)을 빕니다. 하지만 인간이 줄 수 있는 복은 한계가 있습니다. 덕담은 해줄 수 있어도, 생명과 평화를 직접 줄 수는 없습니다. 진정한 복은 돈이나 명예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얼굴을 우리에게 비춰주시는 것, 곧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머무는 평화입니다. 오늘 우리가 조상님들을 위해 기도하는 이유도, 그분들이 하느님의 빛나는 얼굴을 마주 뵙는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비는 복의 뿌리는 하느님입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올해는 돈을 얼마 모으고, 어디 곳에 여행도 가고….” 하지만 오늘 제2독서에서 야고보 사도는 우리에게 충고합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 4,14). 이 말씀은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겸손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다 할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주님께서 원하시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야고 4,15)라고 고백하며 하루하루를 선물로 받아들이며 살아야 합니다. 설날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느님임을 다시 확인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루카 12,35).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조상님들은 우리보다 먼저 인생의 여정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서신 분들입니다. 언젠가 우리도 그 길을 가게 됨을 기억하며, 오늘을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제사는 단순히 음식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성인들의 통공'의 신비 안에서 기도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고, 지금 곁에 있는 가족을 더 뜨겁게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깨어있는 신앙인의 모습이자 참된 효도입니다. 깨어있는 삶이 조상님께 드리는 최고의 효도입니다.
오늘 가족들과 둘러앉아 명절 음식을 나눌 때, 서로의 얼굴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오랜만에 만난 가족, 혹은 갈등이 있었던 친척이 있다면 먼저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십시오. “주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시기를 빕니다” 하는 마음으로 말입니다.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가정과, 고향을 오가는 모든 길 위에, 그리고 먼저 떠나신 모든 조상님의 영혼 위에 가득하기를 빕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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