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믿음의 근육 키우기
오늘부터 제1독서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야고보서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의 지침서입니다. 오늘 전례는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야고보 사도는 시작부터 우리dml 상식을 뒤집는 말씀을 던집니다. “나의 형제 여러분, 갖가지 시련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기십시오”(야고 1,2). 세상 사람들은 시련을 피하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시련이 닥치면, '왜 나에게 이런 힘든 일이 생기지?' 하며 원망합니다.
하지만 야고보 사도는 시련이 믿음의 근육을 키우는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운동선수가 힘든 훈련을 통해 기록을 단축하듯, 신앙인은 시련을 통해 인내를 배우고, 인내가 우리를 영적으로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 앞에서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힘, 그것이 바로 성숙한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느님께 청하라고 합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청해야 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밀려 출렁이는 바다 물결과 같다”고 합니다(야고 1,6 참조). 상황이 좋으면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했다가, 조금만 힘들어지면 “하느님이 계시긴 한가?” 하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얄팍한 신앙을 꼬집는 말씀입니다. 뿌리가 깊지 않으면 파도에 휩쓸려 갈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되려는 마음은 없고, 단지 자신들의 호기심을 채우거나 예수님을 시험해 볼 요량으로 마술 쇼 같은 기적을 원했습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예수님의 반응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마르 8,12).
그분은 왜 탄식하셨을까요? 이미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배고픈 이들에게 양식을 주어 그들을 배불리셨음에도, 사랑의 표징은 보지 않고 “더 센 거를 보여줘”라고 요구하는 그들의 완고함 때문입니다. 눈앞에 계신 구원자를 보지 못하고, 그들은 엉뚱한 증거만 찾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아무런 표징도 보여주지 않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 버리십니다. 믿음이 없는 호기심에 하느님은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힘든 일이 닥치면,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이 또한 내 영혼을 성장시킬 기회다”라고 기쁘게 받아들이나요, 아니면 바리사이처럼 “하느님, 당신이 살아계시면 그 증거를 보여주세요”라며 조건을 걸고 있나요?
오늘 하루, 눈에 보이는 화려한 표징을 쫓지 맙시다. 대신 내 삶에 닥친 크고 작은 시련을 묵묵히 견뎌내는 인내를 청합시다. 파도에 휩쓸리는 얕은 뿌리가 아니라, 파도를 즐기는 서퍼처럼 시련을 즐기는 단단한 신앙인이 되기를 빕니다. “여러분도 알고 있듯이, 여러분의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납니다”(야고 1,3). 아멘.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