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12일 연중 제5주간 목요일

 

왕의 교만과 이방 여인의 겸손

오늘 전례는 아주 대조적인 두 인물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한 명은 지혜의 왕이었으나 결국 어리석게 무너진 솔로몬이고, 다른 한 명은 무시받던 이방인이었으나 예수님의 감탄을 자아낸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입니다. 이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마음의 방향과 자존심의 문제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솔로몬의 쓸쓸한 말년을 전합니다. 젊은 시절, 하느님께 '듣는 마음'을 청했던 지혜로운 왕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명확히 짚어줍니다. 솔로몬 임금이 늙자 그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다른 신들에게 돌려놓았다. 그의 마음은 아버지 다윗의 마음만큼 주 그의 하느님께 한결같지는 못하였다(1열왕 11,4).

솔로몬의 타락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작은 타협들이 모여, 결국 하느님을 향했던 마음이 조각나버린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와 정략 결혼을 통해 안정을 꾀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하느님을 잃고 나라가 두 동강 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우리가 '나는 세례 받았으니 괜찮아'라고 자만하며 돈, 명예, 쾌락과 같은 세상의 가치와 적당히 타협할 때, 우리 마음도 솔로몬처럼 서서히 주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나뉘는 순간 무너지게 됩니다.

반면 오늘 복음의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그녀는 더러운 영이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님께 매달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반응이 너무나 차갑고, 심지어 모욕적으로 들립니다. 자녀들의 빵을 집어 강아지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르 7,27). 여기서 ‘자녀’는 유다인, ‘강아지’는 이방인을 뜻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아니, 사람 차별합니까? 말씀이 너무 심하시네!” 하고 화를 내며 돌아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가졌던 왕의 자존심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자존심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마르 7,28). 그녀는 자신이 자격 없는 사람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식탁은 너무나 풍요로워서, 부스러기만으로도 내 딸을 살리기에 충분하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놀라운 겸손과 믿음에 감탄하시며 딸을 고쳐주십니다. 자존심을 버릴 때 은총을 입습니다.

솔로몬은 온 세상을 다 가졌지만 하느님을 잃었고, 시리아 페니키아 여인은 부스러기를 청했지만 하느님의 능력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솔로몬처럼 당당한 권리로 요구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혹은 내 자존심이 상하면 금방 하느님께 토라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진정한 신앙은 “주님, 저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자비는 저의 부족함보다 훨씬 큽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속에 솔로몬의 교만이 자라고 있는지, 아니면 이방인 여인의 겸손이 있는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화려함을 쫓다 보면 마음이 갈라지지만, 주님의 자비를 겸손히 청하면 부스러기 같은 은총으로도 우리의 삶은 기적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마르 7,2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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