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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월 31일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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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배짱 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오늘은 청소년들의 아버지이자 살레시오회의 창립자인 성 요한 보스코(돈 보스코) 사제 기념일입니다. 항상 웃는 얼굴로 아이들을 대했던 성인의 모습처럼,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는 두 종류의 폭풍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다윗이 겪는 ‘죄의 폭풍’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겪는 ‘자연의 폭풍’입니다. 어제 우리는 다윗이 저지른 끔찍한 죄(간통, 살인 교사)를 보았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나탄 예언자는 다윗을 찾아와 그 죄를 아프게 찌릅니다.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2사무 12,7). 보통 권력자라면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예언자를 죽이거나 감옥에 가두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그 순간 즉시 무릎을 꿇습니다. 변명하지 않고 딱 한 마디를 내뱉습니다. “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 (2사무 12,13). 이 짧은 고백이 다윗을 살렸습니다. 그가 죄를 인정하는 순간, 마음속에 몰아치던 양심의 폭풍이 가라앉고 하느님의 용서가 찾아왔습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죄를 짓지 않은 게 아니라, 죄를 깨닫자마자 회개한 것에 있습니다. 죄의 폭풍은 인정할 때 잠잠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거센 돌풍을 만나 배가 뒤집힐 위기에 처합니다. 공포에 질린 그들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는 예수님을 흔들어 깨웁니다. “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 (마르 4,38). 우리도 인생의 시련이 닥치면 이렇게 기도하곤 합니다. '주님, 제가 죽게 생겼는데 보고만 계십니까? 주무십니까? 어디 계신가요?' 예수님께서 일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십니다.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마르 4,39). 그러자 바다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마르 4,40). 예수님께서 주무실 수 있었던 이유는 피곤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 때문입니...

[묵상] 2026년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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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것의 큰 힘 오늘 전례는 ‘사소한 것의 위력’에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하나는 ‘죄의 확산’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 나라의 성장’입니다. 둘 다 아주 작게 시작하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어제까지 우리는 겸손하고 용감했던 다윗 왕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은 충격적인 추락을 보여줍니다. 모든 비극은 아주 사소한 ‘게으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해가 바뀌어 임금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과 자기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을 내보냈다.  그들은 암몬 자손들을 무찌르고 라빠를 포위하였다.  그때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 (2사무 11,1).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않고 한가로이 거닐던 다윗의 눈에 목욕하는 여인, 밧 세바가 들어옵니다. 다윗은 밧 세바를 보고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죄를 연속적으로 저지르게 됩니다.  시선 (눈의 간음) : 처음에 다윗은 목욕하는 밧 세바로부터 눈을 돌렸어야 했습니다. 간통:  다윗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해 자신의 부하인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범합니다. 기만:  다윗은 자신의 간통을 덮으려고 충직한 부하 우리야를 전장에서 불러들여 술수를 씁니다. 살인 교사:  다윗은 자신의 뜻대로 안 되자, 결국 우리야를 최전방으로 보내 죽게 만듭니다.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때려잡았던 다윗이, 정작 자기 내면의 욕망이라는 적 앞에서는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죄는 처음부터 살인을 계획하고 들어오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작은 틈, 한순간의 방심을 타고 들어와 결국 영혼을 집어삼킵니다. 방심은 거인도 쓰러뜨립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희망의 씨앗을 보여주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농부가 밤낮 자고 일어나는 사이에 저절로 자라나는 씨앗과 같습니다. 또한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나서 큰 가지를 뻗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묵상] 2026년 1월 29일 연중 제3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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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누구이기에... 오늘 전례의 말씀들은 겸손이 어떻게 하느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이 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어제 우리는 다윗이 하느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어 했지만, 오히려 하느님께서 다윗의 집안을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내용을 들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어마어마한 축복의 약속을 들은 다윗의 반응이 나옵니다. 다윗은 주님 앞에 나아가 이렇게 말합니다.  “ 주 하느님, 제가 누구이기에, 또 제 집안이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여기까지 데려오셨습니까? ” (2사무 7,18). 다윗은 왕이었습니다. 보통 왕이라면 '내가 이만큼 노력했으니 이 정도 복을 받는 건 당연하지'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양 떼를 치던 보잘것없는 목동이었음을, 모든 것이 하느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이 고백은 비굴함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을 정확히 아는 겸손한 현실 인식입니다. 이 겸손한 마음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 담을 수 있는 가장 넓은 그릇입니다. 가장 위대한 기도는 “제가 누구이기에?” 라고 묻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과 ‘그릇’ 이야기를 하십니다.  “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 (마르 4,24). 이 말씀은 영적인 법칙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불평의 간장 종지를 내밀면, 하느님은 종지 크기 만큼의 은총밖에 담아주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윗처럼 감사의 큰 양동이를 내밀면, 하느님은 “그래, 네가 그렇게 감사하니 내가 더 넘치도록 주마” 하실 것입니다.  다윗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다 내려놓고 감사의 큰 그릇을 사용했습니다. 그랬기에 하느님은 다윗 왕조를 영원히 견고하게 해주셨습니다. 반면, 우리는 어떤 그릇을 쓰고 있나요? 이웃을 판단할 때는 깐깐한 잣대를 들이대고, 하느님께 청할 때는 인색한 믿음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

[묵상] 2026년 1월 28일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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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이 지어 주시는 집 오늘은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분인 성 토마스 아퀴나스 사제 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는 뛰어난 지성으로 신앙의 신비를 탐구했지만, 그 모든 지혜의 원천은 바로 하느님 말씀의 씨앗이었습니다. 오늘 전례는 ‘하느님을 위해 내가 무언가를 하겠다’는 인간의 열정과, ‘내가 너를 위해 해주겠다’는 하느님의 은총을 대조해서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은 왕궁에서 편안히 살게 되자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위해 근사한 성전을 지어드리고 싶어 합니다. 갸륵하고 기특한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나탄 예언자를 통해 의외의 대답을 하십니다. “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나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데리고 올라온 날부터 오늘까지,  어떤 집에서도 산 적이 없다 ” (2사무 7,5-6). 하느님은 다윗의 건축 계획을 막으십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하느님을 위해 무언가를 해드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집’(왕조)을 세워주시는 것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느님을 위해 봉사한다', '내가 교회를 위해 희생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당신의 집을 짓도록 허락해 드리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것이 겸손이자 은총입니다. 내 힘으로 짓는 성전보다 하느님의 뜻이 먼저입니다. 오늘 복음은 유명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가지 땅 - 길바닥,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 을 말씀하십니다. 여기에 씨앗으로 비유되는 말씀이 똑같이 뿌려졌습니다. 차이는 오직 땅의 상태에 있으며, 땅의 상태를 사람에 비유하여 분류하면 다음과 습니다. 길바닥: 마음이 굳어져서 말씀이 튕겨 나가는 사람 돌밭: 감정적으로 “아멘!” 하고 금방 기뻐하지만, 뿌리가 없어 시련이 오면 금세 포기하는 사람 가시덤불...

[묵상] 2026년 1월 27일 연중 제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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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면과 혈연을 초월한 가족 오늘 전례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자세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는 제1독서의 ‘춤추는 다윗’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의 ‘새로운 가족’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윗 왕은 하느님의 계약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자 너무나 기쁜 나머지, 왕의 체통도 다 잊어버리고 주님 앞에서 온 힘을 다해 춤을 춥니다. 성경은 이렇게 전합니다. “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 (2사무 6,14). 근엄한 왕이 껑충껑충 뛰며 춤추는 모습은 신하들이 보기에 경박해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사울의 딸 미칼은 다윗의 춤추는 모습을 보고 속으로 비웃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성당에 와서 너무 점잖을 빼고 있지는 않나요? 하느님을 만나는 기쁨보다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내 옷차림은 어떤가' 하는 체면에 갇혀 있지는 않은지 살펴봅시다. 다윗처럼 하느님 앞에서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져도 좋습니다. 찬양할 때 기쁘게 노래하고, 기도할 때 진심을 다해 매달리는 그 열정을 하느님께서는 왕의 금관보다 더 귀하게 보십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체면’보다 ‘기쁨’이 먼저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들여보내 예수님을 부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파격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당신 주위에 앉은 제자들과 군중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십니다. “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마르 3,34-35). 이 말씀은 육신의 어머니인 성모님을 무시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확장하신 것입니다.  혈연관계는 끊어질 수 있고,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 안에서 맺어진 영적인 관계는 영...

[묵상] 2026년 1월 26일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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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오르는 믿음 오늘은 사도 바오로의 영적 아들이자 초대 교회의 든든한 기둥이었던 성 티모테오와 성 티토 주교 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두 성인은 바오로 사도가 닦아놓은 복음의 길을 이어받아, 각자 에페소와 크레타에서 양떼를 돌본 목자들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신앙의 이어달리기’와 ‘파견’이라는 두 가지 핵심 주제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감옥에 갇힌 연로한 사도 바오로는 티모테오에게 애정 어린 편지를 씁니다. 바오로는 티모테오의 믿음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 (2티모 1,5). 티모테오의 믿음은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것이 아니라, 할머니와 어머니의 무릎에서부터 전해져 온 유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오로는 안수를 통해 그 믿음에 성령의 힘을 더해주었습니다. 바오로는 권고합니다. “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2티모 1,6). 장작불도 가만히 두면 사그라듭니다. 끊임없이 부지깽이로 뒤적이고 바람을 불어넣어야 다시 타오릅니다. 우리 역시 누군가에게서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이제는 그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기도와 열정으로 다시 불태워야 할 때입니다. 신앙은 이어받은 불씨이기 때문입니다. 불이 붙었다면 이제 빛을 전하러 나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일흔두 제자를 파견하십니다. 티모테오와 티토 같은 후대 주교들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지침은 파격적입니다. “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 (루카 10,4). 전쟁에 나가는 군인은 중무장을 합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러 가는 제자는 비무장이 원칙입니다. 돈이나 장비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