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구유 옆에 놓인 십자가

어제 우리는 기쁨과 환호 속에서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평화!”라는 천사의 노랫소리가 아직 귓가에 맴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인 오늘, 전례의 색깔은 순백색에서 ‘피’를 상징하는 붉은색으로 바뀝니다. 교회는 왜 평화로운 성탄 바로 다음 날, 처참하게 돌에 맞아 죽은 첫 순교자 스테파노 축일을 배치했을까요?

그것은 ‘성탄(Incarnation)의 진정한 의미를 우리에게 일깨우기 위해서입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단순히 낭만적인 동화를 쓰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은 어둠 속에 있는 세상에 ‘빛’으로 오셨고, 빛이 오면 어둠은 반발하기 마련입니다. 나무 구유는 결국 나무 십자가를 향해 있으며, 베들레헴의 평화는 세상의 박해를 통과하여 완성된다는 사실을 스테파노 성인이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은 스테파노의 최후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사람들은 스테파노의 지혜와 성령을 감당할 수 없자, 분노하여 이를 갈며 그에게 달려듭니다. 사방에서 돌이 날아오는 끔찍한 상황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하거나, 저주를 퍼부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전혀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스테파노는 성령이 충만하였다. 그가 하늘을 유심히 바라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사도 7,55).

세상은 그에게 죽음의 돌을 던졌지만, 그는 열린 하늘을 보았습니다. 세상은 그를 향해 증오를 쏟아부었지만, 그는 용서를 내어놓았습니다.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사도 7,60). 스테파노의 이 마지막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작은 예수’였습니다. 성탄절에 오신 예수님을 자기 안에 완벽하게 받아들였기에, 죽음의 순간에도 예수님과 똑같은 사랑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박해를 예고하십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19-20). 스테파노는 이 약속의 산 증인이었습니다. 그가 돌무더기 속에서도 평온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의지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 안에 계신 성령께서 그를 붙드시고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축일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제 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정말로 받아들이셨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도 스테파노처럼 살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피를 흘리는 적색 순교를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삶에는 ‘백색 순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내가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손해를 볼 때, 나를 미워하고 험담하는 이에게 똑같이 돌을 던지는 대신 축복을 빌어줄 때, 이기적인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고 사랑과 나눔을 선택할 때, 그때 우리는 날아오는 돌을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는 스테파노가 되는 것입니다.

어제 우리는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신비, 곧 성탄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람이 하느님처럼 되는 신비, 곧 순교를 봅니다. 우리의 삶에 미움이라는 돌이 날아올 때, 시선을 땅에 두지 말고 스테파노처럼 하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내 힘이 아니라 내 안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힘으로 기도합시다. “주님, 제 마음의 구유에 오셨으니, 이제 제 삶의 십자가도 당신께서 져주십시오. 저도 당신처럼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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