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2월 23일


은총을 택할 때 열리는 입

성탄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길을 닦으러 온 선구자,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탄생 설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도는 순간은 바로 아기의 이름을 짓는 장면입니다. 당시 유다 풍습에 따르면, 장남의 이름은 아버지의 이름을 따르거나 집안 어르신의 이름을 따르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친척들과 이웃들은 당연히 아기 이름을 아버지와 똑같이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했습니다. 이것은 전통이고 상식이며, 인간적인 질서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엘리사벳이 단호하게 반대합니다.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루카 1,60). 사람들은 의아해합니다.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루카 1,61). 이것은 단순히 이름에 대한 논쟁이 아닙니다. 이것은 ‘과거의 관습대로 살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의 새로운 뜻을 따를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싸움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벙어리가 되어 있던 아버지 즈카르야에게 묻습니다. 즈카르야는 서판을 달라 하여 이렇게 씁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루카 1,63). 이 짧은 문장을 쓰는 순간,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루카 1,64).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다(은총이시다)”입니다.

즈카르야는 그동안 자신의 생각과 불신에 갇혀 침묵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인간적인 혈통과 관습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선택했을 때, 비로소 그의 묶였던 혀가 풀리고 찬미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영적 교훈을 줍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리 집안은 원래 그래”, “남들은 다 이렇게 해”, “이게 세상 사는 상식이야”라는 고정관념과 관습에 매여 있다면, 우리의 영혼은 벙어리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그런 삶에서는 하느님을 향한 진정한 찬미가 터져 나올 수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말라키 예언자는 이렇게 예언합니다.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말라 3,2). 불은 불순물을 태워버리고, 잿물은 때를 씻어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익숙하게 여겼던 낡은 습관과 고집을 태워버리고 씻어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 부부는 정화의 과정을 통과했습니다. 그들은 집안의 전통보다 하느님의 뜻을 앞세우는 용기를 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의 가정에서 구원의 선구자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끊어내야 할 관습은 무엇일까요? 혹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세상의 복수심일까요? 아니면 “돈이 최고”라는 물신주의일까요? 우리가 세상의 목소리에 “안 돼!”라고 외치고, “내 삶의 주인은 하느님의 자비(요한)입니다!”라고 고백할 때, 꽉 막혔던 우리 영혼의 입이 열릴 것입니다.

오늘 하루, 즈카르야처럼 마음의 서판에 써봅시다. “내 삶의 이름은 걱정도 아니고, 우울도 아닙니다. 내 삶의 이름은 ‘하느님의 은총’(요한)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선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 입술을 열어 당신을 찬미하게 하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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