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규칙에 갇힌 마음, 사랑으로 치유하는 마음
오늘 복음은 긴장감이 감도는 식사 자리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초대받아 가셨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는 따뜻한 환대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루카 14,1)라고 전합니다. 그들은 올가미를 놓으려고 눈에 불을 켠 채 예수님을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 팽팽한 긴장 속에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수종을 앓는 사람’이었습니다. 몸이 붓고 숨이 차는, 누가 보아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일부러 그 자리에 데려다 놓았는지도 모릅니다. ‘안식일에, 이 거룩한 날에, 저 자가 과연 저 사람을 고칠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악의적인 시선과 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침묵 속에 갇혀 있는 위선을 향해 먼저 질문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루카 14,3). 아무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합당하다’고 하면 그들이 스스로 율법을 어기는 셈이 되고,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 자신들의 무자비함을 드러내는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비겁한 침묵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동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셨습니다”(루카 14,4). 그리고 그들이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루카 14,5). 바리사이들에게는 율법의 조항이 한 인간의 고통보다 더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안식일’이라는 규칙의 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율법이라는 차가운 돌로 굳어져, 바로 눈앞에서 신음하는 형제의 고통을 보지 못했습니다.
바로 이 ‘규칙에 갇힌 마음’이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그토록 애통해하는 이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로마 9,2)을 토로합니다. 그가 왜 그토록 고통스러워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께 선택받은 민족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계약, 율법, 예배, 약속 그리고 위대한 조상들이 있었습니다(로마 9,4-5 참조). 세상의 그 어떤 민족도 받지 못한 크나큰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든 은총의 정점이요,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로마 9,5)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 역시 바리사이들처럼, 율법이라는 ‘선물’에 집착한 나머지, 그 선물을 주신 ‘주님’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가졌다는 그 사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그 혈통에 갇혀, 정작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자비,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바오로의 슬픔은 바로 이 안타까운 엇갈림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오늘 이 두 말씀은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가톨릭 신자’라는 신분, ‘주일 미사’라는 규칙, ‘교회법’이라는 조항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는 주일미사에 빠지지 않아’,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해’라는 사실에 만족한 나머지, 내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웃의 고통, 내 가족의 아픔, 내 공동체 안의 신음 소리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저 사람은 그럴 만해’라는 나만의 율법으로 누군가를 단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율법주의에 갇힐 때, 그것은 바리사이의 위선이 되고 바오로의 슬픔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이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때, 그것은 생명을 구하는 기적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의 법은 사람을 옭아매는 규칙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사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참된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를 해방시키고 그에게 기쁨을 되찾아주는 ‘치유’ 안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의 삶의 자리에도 ‘수종을 앓는 이’가 있습니다. 질병으로, 가난으로, 외로움으로, 죄의 상처로 웅크리고 있는 이웃이 있습니다. ‘안식일이니 안 돼’, ‘네 일이 아니니 상관 하지 마’라며 세상은 우리를 유심히 지켜볼지도 모릅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겠습니까? 비겁한 침묵입니까, 아니면 용기 있는 사랑입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들의 손을 붙잡아, 병을 고쳐주기를 원하십니다. 율법의 눈이 아니라 자비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정죄가 아니라 치유의 손길을 내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굳어지게 만드는 나만의 ‘율법’은 무엇인지 돌아보고, 그것을 주님께 봉헌합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 내 형제를 위해 기꺼이 규칙을 넘어서는 사랑의 마음을 채워주시도록 간절히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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