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9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좁은 문 그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오늘 복음에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매우 궁금하고, 또 어쩌면 두려운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루카 13,23). 이 질문은 2천 년 전 그 사람만의 질문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마음속으로 한 번쯤 품어보았던 질문입니다. ‘나는 과연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이렇게 사는 것으로 과연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몇 명이 구원받을 수 있다”라고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루카 13,24). ‘힘써라’는 이 단어는, 그리스어 원어로 보면 ‘(운동선수가) 목숨을 걸고 싸우다’, ‘고뇌하며 애쓰다’라는 아주 격렬한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은 그저 주일미사에 출석 도장을 찍는다고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치열한 노력과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더욱 강도를 높여 말씀하십니다. 문이 닫힌 뒤에 많은 사람이 “'주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며 문을 두드리기 시작하여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하고 대답할 것이다"(루카 13,25) 라는 겁니다. 또한 “'저희는 주님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께서는 저희가 사는 길거리에서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너희가 어디에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모두 내게서 물러가라, 불의를 일삼는 자들아!'"(루카 13,26-27) 하고 냉정하게 내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매주 미사에 와서 주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그분의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 같습니다. ‘나는 성당에 다닌다’, ‘나는 세례받은 신자다’라는 그 사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 없이, 삶의 변화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셨지만’ 정작 주님께는 당신과 우리가 ‘모르는 사이’가 될 수 있다는 무서운 경고입니다.

이 좁은 문, 이 치열한 싸움 앞에서 우리는 절망하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저 문을 통과할 수 없겠구나’, ‘나는 너무 나약하고 부족한데 어떡하지?’ 바로 이 절망적인 순간에, 오늘 제1독서 로마서의 말씀이 우리에게 한줄기 빛처럼 다가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의 이 비참한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께서는 나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로마 8,26).

우리는 나약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갈 힘이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습니다. 바로 그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 주십니다”(로마 8,26). 우리가 구원의 문 앞에서 길을 잃고 주저앉아 있을 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 대신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너무 지쳐서 “주님, 도와주십시오”라는 말 한마디 내뱉지 못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 속에서 “아빠! 아버지!” 하고 부르짖으며 우리를 하느님께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과 함께하는 싸움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우리의 노력이 바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증거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도록 좁은 문을 만들어 놓고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우리가 그 문을 통과하기를 우리보다 더 간절히 바라시는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단언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28).

우리의 실수, 나약함, 죄까지도, 우리가 그분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그분께서는 그 모든 것을 합하여 결국 우리를 선으로, 구원으로 이끄신다는 놀라운 약속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미리 뽑으시고”, “미리 정하셨으며”,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고”, 마침내 “영광스럽게”(로마 8,29-30 참조) 하실 것입니다. 구원은 나의 공로가 아니라,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의 열렬한 사랑의 계획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좁은 문’을 가리키십니다. 세상의 넓은 문, 곧 이기심과 쾌락과 무관심의 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 희생의 길이라는 좁은 문으로 들어오라고 초대하십니다. 이 초대에 ‘예’라고 응답하며 힘써 싸웁시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맙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넘어질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우리가 길을 잃을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에서"(루카 13,29) 모여든 우리가, 스스로를 ‘첫째’라고 여기는 교만을 버리고 ‘마지막’이 되는 겸손을 선택할 때,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꺼이 그 좁은 문을 통과하여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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