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8일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낯선 이들을 한집안으로 부르시는 주님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열두 사도 중 두 분,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의 축일을 지냅니다. 이분들에 대해 우리는 솔직히 아는 바가 많지 않습니다. 복음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듣기란 어렵고, 베드로나 요한처럼 큰 역할을 맡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쩌면 교회라는 거대한 건물의 눈에 띄지 않는,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될 ‘숨겨진 초석’과도 같은 분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아는 거의 유일한 정보, 바로 성 시몬의 별명 하나가 우리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그를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루카 6,15)이라고 소개합니다. ‘열혈당원’은 당시 로마의 식민 통치에 맞서 무력 항쟁도 불사하던 열렬한 민족주의자, 독립 투쟁가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로마에 대한 적개심과 정치적 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불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열두 명의 사도단 안에는 또 누가 있었습니까? 바로 ‘마태오’라는 이름을 가진 세리가 있었습니다. 세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동족의 피를 빨아 로마에 세금을 바치고 자신의 배를 불리던, 민족의 반역자요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독립 투쟁가 시몬과 민족의 반역자 마태오가 한자리에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스승을 따르며, 한솥밥을 먹고, 같은 사명을 위해 파견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이보다 더 어색하고, 모순되며, 가망 없어 보이는 조합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불가능해 보이는 조합 속에, 오늘 복음과 독서의 핵심 진리가 숨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선택을 하셨을까요? 오늘 복음은 그 선택 직전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시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루카 6,12). 열두 사도를 뽑은 예수님의 선택은 그분의 인간적인 계획이나 정치적인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밤샘 기도를 통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따른 결과였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 도저히 하나가 될 수 없는 이들을 불러 모아, 당신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한 가족’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 에페소서의 말씀이 이 놀라운 신비를 설명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에페 2,19).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과 이방인,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던 두 집단이 어떻게 ‘한 가족’이 되었는지를 선포합니다. 그 비결은 바로 ‘기초’와 ‘머릿돌’입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에페 2,20).
시몬과 유다 그리고 마태오와 베드로... 이토록 다르고 부족한 사도들이 교회의 ‘기초’가 될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라는 단 하나의 머릿돌을 바라보고 그분께 단단히 결합되었기 때문입니다. 열혈당원 시몬도, 세리 마태오도, 예수님 안에서 자신의 과거와 이념을 내려놓고 ‘사도’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습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정치적 신념이나 민족적 배경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그분이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바로 우리, 2000년 후의 교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공동체 안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우리 역시 각자가 얼마나 다릅니까? 성격, 생각, 살아온 배경, 정치적 견해가 모두 제각각입니다. 때로는 저 시몬과 마태오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함께하기 힘든 형제자매가 내 옆에 앉아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요? 회당장처럼 서로를 판단하고 갈라서야 합니까? 아니면 예수님처럼, 이 모든 다름을 끌어안고 밤을 새워 기도하며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마지막 부분에서, 당신이 어떻게 이 모든 분열을 치유하시는지 보여주십니다. 산에서 내려오신 그분께 수많은 군중이 몰려왔고,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던 것입니다”(루카 6,17-19 참조). 우리를 하나로 묶고 치유하는 힘은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옵니다. 우리가 서로의 다름을 보며 판단을 멈추고, 대신 함께 그분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성체를 받아 모실 때, 우리는 비로소 ‘한가족’이 됩니다.
오늘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는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다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머릿돌 위에 굳건히 서 있는가 그리고 그분 안에서 함께 ‘하느님의 거처’(에페 2,22)로 함께 지어져 가고 있는가입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의 다름을 비난하는 대신, 그 다름을 묶어 하나가 되게 하시는 주님의 기적을 찬미하며, 이 세상 속에서 ‘하느님의 한가족’을 살아내는 거룩한 성전이 되도록 힘씁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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