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4월 11일 부활 팔일 축제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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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화와 증언 부활 팔일 축제의 마지막 날을 맞이하며,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 막달레나와 두 제자, 그리고 마침내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는 과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줍니다. 이와 더불어 제1독서에서는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세상 권력 앞에서도 얼마나 당당하게 주님을 증언했는지를 전합니다. 이 두 장면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바로 우리 삶의 '변화'와 '증언'입니다. 제1독서에서 유다 지도자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그들이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당당하고 논리적으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놀라운 변화의 비결은 단 하나, 바로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녔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사도 4,13 참조). 이처럼 신앙은 지식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지식이 풍부해도 주님과 머무는 시간이 없다면 그 말에는 힘이 실리지 않지만, 소박한 신자라도 삶 속에서 주님을 만난 생생한 체험이 있다면 그 한마디는 세상을 뒤흔드는 힘을 갖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부활을 목격한 이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을 꾸짖으십니다. 스승과 3년이나 동고동락한 제자들에게조차 믿음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꾸짖는 데서 멈추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부족한 이들에게 "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 16,15)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기십니다. 주님은 완벽하게 준비된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에 당신께 온전히 매달리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의 의심과 나약함은 주님께 걸림돌이 되지 않지만, 오직 완고한 마음만이 그분을 가로막을 뿐입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을 협박하는 권력자들 앞에서 당당히 선포합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 일인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 (사도 4,19). 진정한 부활의 증인은 누군가 시켜서 의무적으...

[묵상] 2026년 4월 10일 부활 팔일 축제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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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그물을 채우는 아침 식사의 초대 부활의 기쁨이 가득한 팔일 축제의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번째로 나타나신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 장소가 꽤 의외입니다. 화려한 성전이나 숨어 지내던 다락방이 아닌, 그들이 본래 살아가던 평범한 삶의 터전인 티베리아스 호숫가이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다시 물고기를 잡으러 나섰습니다. 부활을 체험했음에도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 (요한 21,3)라고 말하는 베드로의 모습에서는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려는 인간적인 허탈함이 묻어납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애썼지만 결과는 빈 그물뿐이었습니다. 우리 역시 자신의 경험과 지식, 노력만을 믿고 밤낮으로 그물을 던지지만, 정작 아침이 밝았을 때 허무함만을 손에 쥐게 되는 영적인 빈 그물의 순간을 마주하곤 합니다. 날이 밝아올 무렵, 해변에 나타난 낯선 이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보라고 권합니다. 베테랑 어부들이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그들이 자기 고집을 꺾고 그 말씀에 순명했을 때 그물은 백쉰세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로 가득 찼습니다. 기적은 나의 능력이 출중할 때가 아니라,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주님의 방식에 따를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주님이십니다" (요한 21,7)라는 요한의 외침에 베드로는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뛰어듭니다. 해변에서 제자들을 맞이한 것은 숯불 위에 놓인 따뜻한 생선과 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버리고 떠났던 제자들을 꾸짖는 대신, 밤새 추위와 허기에 지친 그들을 위해 직접 아침 식사를 차려주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실수와 나약함을 다 아시면서도 묵묵히 기다려주시는 분이며, 지친 우리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요한 21,12)라고 손을 내미시는 따뜻한 분입니다. 이 사랑의 체험은 베드로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빈 그물을 보며 절망하던 어부가 어떻게 성전 경비병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 우리가 ...

[묵상] 2026년 4월 9일 부활 팔일 축제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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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선물 세 가지 어제 우리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그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른 이들에게 체험을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그들 한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여전히 당황하고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평화와 현존 그리고 증인이라는 세 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예수님의 첫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 (루카 24,36)였습니다. 이 평화는 단순히 마음이 편안해지라는 덕담이 아닙니다. 스승을 버리고 도망쳤던 제자들의 죄책감을 씻어주시고,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깨진 관계를 다시 이어주시는 용서의 선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평화를 먼저 건네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유령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너희도 보다시피 살과 뼈가 있다 ” (루카 24,39)라고 말씀하시며 구운 물고기 한 토막을 직접 잡수십니다. 부활은 머릿속의 환상이나 추억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아프고 괴로운 육체적인 현실과 같은 우리 삶의 구체적인 현장 안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주님은 관념 속에 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이웃의 얼굴과 우리가 겪는 일상의 고통 속에 살과 뼈를 가진 실재로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이 왜 필요했는지, 그것이 어떻게 영광으로 이어지는지를 풀이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삶에 닥치는 고통도 주님의 빛으로 조명되지 않으면 그저 비극일 뿐입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아, 그때 그 아픔이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과정이었구나'라는 영적인 깨달음이 생깁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조각을 구원이라는 큰 그림으로 완성해 주시는 분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는 솔로몬 주랑에 모인 이들에게 당당하게 외칩...

[묵상] 2026년 4월 8일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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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을 만난 이들 부활 팔일 축제의 수요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의 이야기와, 부활의 능력이 구체적인 치유로 드러나는 베드로의 기적을 함께 마주합니다. 이 두 사건은 우리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는지 를 명확히 가르쳐 줍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예루살렘을 등지고 떠나는 중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그들에게 꿈이 무너진 곳, 스승이 죽임을 당한 실패의 장소였습니다. 그들은 슬픔에 잠겨 바닥만 보고 걷느라, 곁에서 함께 걷고 계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실패, 이별, 고통과 같은 인생의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도망치듯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가 기쁠 때뿐만 아니라, 가장 낙담하여 힘없이 걷는 그 길 위에서도 우리와 보조를 맞춰 함께 걷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의 슬픔이 눈을 가리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여셨습니까? 먼저 성경을 풀이해 주시며 그들의 마음을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녁 식탁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때 비로소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가 매일 참례하는 미사 전례의 구조입니다. 우리는 말씀 전례를 통해 차갑게 식은 마음을 데우고, 성찬 전례를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내 안에 모십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미사 중에 평화를 느낀다면 이미 여러분 곁에 부활하신 주님이 와 계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는 성전 문 곁에 앉아 있던 앉은뱅이에게 놀라운 선포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은과 금 같은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지만, 베드로는 그에게 근본적인 치유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었습니다. 부활은 관념이 아닙니다. 부활은 앉아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우고, 걷게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게 만드는 실제적인 권능입니다. 이 시대는 은과 금이 모든 ...

[묵상] 2026년 4월 7일 부활 팔일 축제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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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과 응답 부활 팔일 축제의 셋째 날입니다. 어제는 '달려가는 기쁨'에 대해 묵상했다면, 오늘은 '머무르는 사랑'과 '부르심'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우리 신앙의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아주 매력적인 인물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는 무덤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은 온통 사라진 시신과 과거의 슬픔에 고정되어 있었죠. 그래서 천사가 말을 걸어도, 심지어 부활하신 예수님이 등 뒤에 서 계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주님을 정원사로 착각할 정도였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있습니다. 고통이 너무 크거나 눈앞의 문제가 너무 무거우면, 바로 곁에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주님은 멀리 계신 게 아니라, 우리의 슬픔이 주님을 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장황한 설명으로 당신의 부활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그녀의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셨습니다. “마리아야!” (요한 20,16). 그 순간 마리아의 세상은 완전히 뒤바뀝니다. '정원사'가 '라뿌니'가 되는 기적은 논리가 아니라 인격적인 만남 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군중 속의 하나로 보지 않으십니다. 내 이름, 내 아픔, 내 사정을 정확히 아시고 이름을 부르시는 분입니다. 여러분도 기도 중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의 이름을 어떻게 부르고 계신지 말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나를 더이상 붙들지 마라" 고 하십니다. 이는 과거의 예수님께 매달리지 말고, 이제 성령 안에서 모든 이와 함께하실 새로운 현존의 방식으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즉시 제자들에게 달려가 이렇게 외칩니다.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요한 20,18). 이 고백은 오늘 제1독서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마음이 불타올라  회개한 삼천 명의 신자들에게로 이어집니다. 부활은 '아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이며, 그 본 것을 '전하는 것'입...

[묵상] 2026년 4월 6일 부활 팔일 축제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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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쁨을 전하는 바쁜 발걸음 어제 우리는 주님 부활의 장엄한 기쁨을 맞이했습니다. 교회는 오늘부터 팔일 동안을 부활 대축일로 지냅니다. 부활의 신비가 그토록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부활의 아침, 서로 상반된 길을 선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빈 무덤을 확인한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마태 28,8) 제자들에게 달려갑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신비 앞에서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은 공포가 아니라 하느님의 경이로움에 압도된 거룩한 경외심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나타나 첫마디로  “평안하냐?”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 삶의 모든 두려움을 기쁨으로 바꾸어 주시는 분입니다. 혹시 여러분을 떨게 만드는 현실의 고통이 있다면, 부활하신 주님의 발을 붙잡았던 여자들처럼, 우리도 기도로 주님의 발치를 굳게 붙듭시다. 오늘 복음에서 여자들은  “서둘러” , “달려갔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활의 기쁜 소식은 나 혼자 간직할 때보다 타인에게 전하기 위해 발을 뗄 때 더욱 뜨거워집니다. 제1독서의 베드로 사도를 보십시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며 숨어 지냈던 겁쟁이 베드로가, 이제는 유다인들 앞에서 당당하게  “하느님께서 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사도 2,32)라고 외칩니다. 부활의 체험은 비겁한 사람을 용기 있는 증인으로 변화시킵니다. 우리 역시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전하는 ‘살아있는 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여자들은 기쁨을 전하러 달려갔지만,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수석 사제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진실을 마주하고도 회개하기는커녕, 돈으로 군사들을 매수하여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 갔다” 는 거짓 소문을 퍼뜨립니다. 하지만 진실은 빛과 같아서 아무리 가려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