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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5년 12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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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족보에 숨겨진 하느님의 끈기 있는 사랑 오늘부터 전례는 성탄을 향한 마지막 준비 단계인 대림시기 후반부로 접어듭니다. 이제부터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보다, 2천 년 전 베들레헴에 오신 아기 예수님의 탄생 신비에 더 집중합니다. 그 시작을 알리는 오늘 복음은, 우리가 지루하다고 느끼기 쉬운 긴 명단, 바로 예수님의 족보입니다. 낳고, 낳고, 또 낳고…. 알 수 없는 이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딱딱해 보이는 이름들의 나열 속에 하느님의 엄청난 사랑의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아들들을 축복하며, 넷째 아들 유다에게 예언합니다. “ 유다에게 조공을 바치고 민족들이 그에게 순종할 때까지  왕홀이 유다에게서, 지휘봉이 그의 다리 사이에서 떠나지 않으리라 ” (창세 49,10). 이 예언은 수천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오늘 복음의 족보에서 완성됩니다.  마태오 복음 사가는 예수님이 바로 그 유다의 후손이며, 다윗의 자손이자, 아브라함의 약속을 완성하는 분이심을 증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한 번 하신 약속을 수천 년이 지나도 결코 잊지 않으시고 기어이 지키시는 신의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런데 족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욱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조상들이 모두 거룩하고 훌륭한 위인들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족보에는 죄인들의 이름이 버젓이 들어가 있습니다. 다윗은 위대한 왕이었지만,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었습니다. 므나쎄 같은 왕은 끔찍한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또한 이방 여인들과 사연 있는 여인들의 이름도 나옵니다. 타마르, 라합, 룻…. 당시 유다인들이라면 족보에 올리기 꺼렸을, 부끄러운 역사나 이방인의 피가 섞여 있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께서는 깨끗하고 완벽한 가문, 흠 없는 역사를 통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와 상처, 부끄러움과 실패로 얼룩진 인간의 진짜 역사 한가운데로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실...

[묵상] 2025년 11월 22일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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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누구의 하느님을 믿으십니까?  오늘 우리는 ‘음악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진 성녀 체칠리아 동정 순교자를 기념합니다. 성녀에 대한 아름다운 전승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결혼식 날,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음속으로는 오직 하느님께만 "주님, 제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지켜주소서" 라고 노래했다고 합니다. 그녀의 마음의 노래는, 오늘 복음과 독서가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두 가지 삶의 방식, 곧 ‘죽음의 삶’과 ‘생명의 삶’ 사이에서, 우리가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기에서, 우리는 ‘죽음의 삶’을 살았던 권력자, 안티오코스 임금의 비참한 최후를 봅니다. 그는 한평생 자신의 힘과 재산, 권력이라는 ‘세상의 음악’에 취해 살았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성전을 약탈하고 모독했으며(1마카 6,12 참조),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을 무참히 박해했습니다. 그는 이 땅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어떠했습니까? 페르시아의 신전 약탈에 실패하고, 유다에서 자신의 군대가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그는 극심한 슬픔에 잠깁니다. 그리고 병상에 누워, 평생 처음으로 진실을 고백합니다. “ 내가 예루살렘에 끼친 불행이 이제 생각나네.  그곳에 있는 금은 기물들을 다 빼앗았을뿐더러,  까닭 없이 유다 주민들을 없애 버리려고 군대를 보냈던 거야.  그 때문에 나에게 불행이 닥쳤음을 깨달았네.  이제 나는 큰 실망을 안고 이국땅에서 죽어 가네" (1마카 6,12-13). 그는 죽음 앞에서 절망합니다. 그가 평생 의지했던 돈, 권력, 군대가 자신을 구원해 주지 못함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삶은 슬픔과 허무라는 죽음으로 끝납니다. 그는 철저히 죽은 이들의 신을 섬겼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살펴 봅시다. 예수님 앞에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을 믿는 또 다른 이들, 곧 사두가이들이 나타납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삶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