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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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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교 vs 감사 오늘은 우리 내면에 숨겨진 가장 치졸하면서도 무서운 감정, 바로 ‘시기와 질투’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개선장군처럼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인들은 신이 나서 춤추며 노래합니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1사무 18,7). 이 노래 가사 한 줄이 사울 왕의 인생을 송두리째 무너뜨립니다. 사울은 이 말을 듣고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그가 더 차지할 것이 없겠구나.”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는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울의 적이 아니라, 나라를 구한 영웅이자 사울의 충신이었습니다. 다윗이 잘되면 사울의 나라도 튼튼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질투에 눈이 먼 사울에게 다윗은 제거해야 할 경쟁자로만 보였습니다. 질투는 동지를 적으로 만들어버리는 무서운 독약입니다. 결국 사울은 하느님의 영을 잃어버리고 악령에 시달리게 됩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모습은 사울과 정반대입니다.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들어 그분을 에워쌉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더러운 영들조차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마르 3,11) 하며 엎드립니다. 만약 사울 왕 같았다면 이 인기를 즐기며 “나를 왕으로 추대하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알려지는 것을 엄하게 금하셨습니다. 예수님께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환호나 인기가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불행은 ‘비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천 대 수만’. 이 숫자에 집착하는 순간, 감사는 사라지고 분노만 남았습니다. 우리도 사울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곤 합니다. “동창은 저렇게 잘나가는데 나는 뭐지?”, “저 집 아이는 1등 했다는데 우리 아이는 왜 이 모양이지?” 끊임없이 남과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지옥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 을 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