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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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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변화 오늘 말씀은 구약과 신약이 완벽하게 하나의 주제로 만나는 날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의 눈과 하느님의 눈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주는 ‘시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첫째, 사람은 ‘스펙’을 보지만, 하느님은 ‘마음’을 보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무엘 예언자는 사울을 대신할 새로운 왕을 뽑으러 이사이의 집으로 갑니다. 사무엘은 이사이의 맏아들 엘리압을 보자마자 이렇게 감탄합니다. “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 (1사무 16,6). 키도 크고 잘생기고 듬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단호하게 “아니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말씀을 남기십니다.  “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 (1사무 16,7). 하느님께서 뽑으신 다윗은 어땠습니까? 형들이 사무엘을 만나는 동안 들판에서 양이나 치고 있던, 다윗의 아버지조차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던 막내였습니다. 나이, 외모, 학벌과 같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자격 미달이었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그의 중심은 빛나고 있었습니다.  “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 (1사무 16,7).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큰 해방감을 줍니다. 세상은 자꾸 우리에게 “성공해야 해”, “예뻐져야 해”, “더 많이 가져야 해”라고 압박하지만, 하느님은 우리의 화려한 포장지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진심 하나면 충분하다고 하십니다. 둘째, 사람은 ‘규칙’을 보지만, 하느님은 ‘사람’을 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은 마치 CCTV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을 감시합니다. 제자들이 배가 고파서 밀 이삭을 뜯어 먹자, 그들은 즉시 “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 (마르 2,24)라고 비난합니다. 바리사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사람의 배고픔이 아니라 자신들이 만든 규정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차갑고 날카롭고 차가운 ...

[묵상] 2026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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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종과 기쁨 연중 제2주간을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오늘 전례는 신앙생활에서 형식과 본질 중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아주 날카롭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무엇을 바쳤는가?”, “내가 어떤 율법을 지켰는가?”에 집중하지만, 하느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마음 상태에 있습니다. 첫째, 제사는 순종을 덮을 수 없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울 왕은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전리품 중에서 가장 좋은 양과 소를 남겨둡니다. 그리고 사무엘 예언자가 추궁하자 이렇게 변명합니다. “ 군사들이 주 어르신의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양 떼와 소 떼 가운데에서도 가장 좋은 것을 아껴 둔 것이지요 ” (1사무 15,15). 사울은 ‘제물’이라는 거룩한 핑계를 댔습니다. 하느님께 바치기 위해서라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하지만 사무엘은 하느님의 마음을 정확히 대변합니다. “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 (1사무 15,22).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살진 송아지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우리의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내 고집대로 행동해 놓고, 나중에 헌금을 많이 하거나 봉사를 많이 한다고 해서, 그 불순종이 덮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둘째, 단식은 기쁨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 따집니다. “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 (마르 2,18). 당시 단식은 경건함의 상징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의 비유를 드십니다. 신랑(예수님)이 함께 있는 잔치 날에 슬픈 얼굴로 굶고 있는 것은 오히려 예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유명한 말씀이 나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르 2,22). '새 포도주'는 예수님께서...

[묵상] 2026년 1월 14일 연중 제1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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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필수 자세 오늘 독서와 복음은 신앙인이 갖추어야 할 세 가지 필수적인 자세 를 아주 조화롭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귀’, 이웃을 ‘섬기는 손’ 그리고 하느님과 독대하는 ‘기도하는 무릎’입니다. 첫째, 사무엘의 ‘듣는 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어린 사무엘은 한밤중에 자신을 부르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것이 하느님의 소리인 줄 모르고 스승 엘리에게 달려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매일 우리 양심을 통해, 성경 말씀을 통해, 때로는 이웃의 입을 통해 우리를 부르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소음에 묻혀, 혹은 내 생각이 너무 많아 그 세미한 음성을 놓치곤 합니다.  오늘 사무엘이 배운 기도를 우리 마음에 새깁시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1사무 3,10). 우리는 보통 기도할 때 “주님, 들으십시오. 제가 말하겠습니다”라고 하며 내 요구사항만 쏟아내기 바쁩니다. 하지만 참된 기도는 내 입을 다물고 주님의 뜻을 듣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내 주장을 멈추고 잠시 침묵하며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 하고 물어보십시오. 둘째, 시몬의 장모가 보여준 ‘섬기는 손’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다가가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가셨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다음 장면입니다. “그러자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마르 1,31). 병이 갓 나은 환자라면 “아이고, 이제 살겠네. 좀 더 쉬어야지” 할 법도 한데, 그녀는 즉시 일어나 예수님과 제자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이것이 은총을 입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치유와 은총은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봉사하고 나누라고 주시는 힘입니다. 내가 받은 건강, 재능, 시간으로 이웃을 섬길 때, 그 은총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셋째, 예수님의 ‘기도하는 무릎’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병자들을 고치시느라 밤늦도록 쉴 틈이 없으셨습...

[묵상] 2026년 1월 13일 연중 제1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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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기도와 응답 연중 제1주간 화요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말’(Word)에 대한 깊은 대조를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는 소리 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울부짖는 한 여인의 ‘침묵의 말’이 있고, 복음에는 마귀조차 굴복시키는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한나는 실로라는 성소에서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그녀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수치심, 프닌나의 멸시, 남편의 위로조차 닿지 않는 깊은 고독 속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통곡뿐이었습니다. 성경은 그녀의 기도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한나는 속으로 빌고 있었으므로, 입술만 움직일 뿐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사무 1,13). 사제 엘리는 한나의 겉모습만 보고 그녀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하여 꾸짖습니다. 세상의 눈은 이렇습니다. 우리의 깊은 속사정을 다 알지 못하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거나 오해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한나는 변명하지 않고 자신의 진심을 토로합니다. “아닙니다. 나리!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닙니다. 저는 마음이 무거워 주님 앞에서 제 마음을 털어놓고 있었을 따름입니다” (1사무 1,15).  ‘주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기도’,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쇠입니다.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남들이 알아듣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가슴을 치며 속으로 삼키는 그 눈물을 하느님께서는 모두 보고 계십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해 주셨고 , 그녀는 사무엘을 잉태하게 됩니다. 반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 은 카파르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십니다. 사람들은 몹시 놀랐습니다. 율법 학자들처럼 따분하게 지식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에 힘이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말씀은 영혼을 꿰뚫고, 삶을 변화시키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 권위는 마귀 들린 사람에게서 극적으로 드러납니다. 더러운 영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당신은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입니다” (마르 1,24) 하...

[묵상] 2026년 1월 12일 연중 제1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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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과 부르심 어제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 시기를 모두 마치고, 오늘부터는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가 시작됩니다. 사제는 이제 녹색 제의를 입습니다. 녹색은 생명과 희망 그리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성장을 상징합니다. 화려했던 성탄의 빛과 축제 분위기는 지나갔지만, 이제야말로 우리 신앙의 진정한 실천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하루 속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따를 것인가? 오늘 말씀들이 첫 단추를 꿰어줍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 곧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물을 던지고 있던 시몬과 안드레아, 그물을 손질하던 야고보와 요한을 보십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때와 장소입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특별한 수련을 하고 있을 때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땀 흘려 일하고, 생계를 위해 고군분투하던 가장 일상적인 순간에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마르 1,17).  이 부르심에 제자들은 어떻게 응답합니까? 성경은 간결하게 기록합니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마르 1,18). " 곧바로" ,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들은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고기 잡을 철이니 나중에 가겠습니다”라고 핑계 대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생업인 ‘그물’보다, 삶의 방향을 제시해 주는 예수님의 ‘목소리’가 더 중요했습니다. 반면, 오늘 제1독서의 한나는 조금 다른 모습의 일상을 보여줍니다. 그녀는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유로 프닌나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남편의 위로에도 마음이 풀리지 않아 울고만 있습니다. 그녀의 일상은 결핍과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일 독서에서 보게 될 것입니다. 한나는 그 슬픔을 안고 주님 앞에 나아가 기도로 승화시킴으로써 위대한 예언자 사무엘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