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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월 11일 주님 세례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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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그치지 않는 사랑 오늘은 ‘주님 세례 축일’입니다. 구유에 누워 계시던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던 성탄 시기가 끝나고, 이제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며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의젓한 청년 예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인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에서,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 사이의 대화를 아주 중요하게 다룹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깜짝 놀라며 말립니다.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마태 3,14). 요한의 말은 지당합니다. 죄 없으신 분이 왜 회개의 세례를 받으십니까? 윗분이 아랫사람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태 3,15). 여기서 ‘모든 의로움’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단순히 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며, 죄 많은 인간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는 너희와 다르다’며 높은 제단 위에 앉아 계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인들이 씻은 더러운 물, 그 차가운 요르단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셨습니다. 죄가 없으신 분이 죄인들의 줄에 서심으로써, 죄인인 우리를 단죄하는 대신 우리와 어깨동무를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느님의 의로움’이자 ‘겸손’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모습은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 예언서에 예언된 ‘주님의 종’의 모습과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이사 42,3). 세상은 부러진 갈대는 쓸모없다고 꺾어버리고, 희미한 등불은 귀찮다고 꺼버립니다. 약육강식의 논리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다릅니다. 우리 영혼이 죄로 인해 상처 입고 부러진 갈대처럼 흔들릴 때, 그분은 우리를 내치지 않으시고 조용히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직접 그 낮은 물에 들어가심으로써, 우...